
WINGS
8화
치이이이익—!
압력 밸브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하얀 증기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금속 외벽이 좌우로 육중하게 갈라지며 안쪽의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뼈 속까지 울렸다.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벽에 바싹 달라붙었다. 칸은 철근을 치켜든 채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온 역시 다리의 통증을 잊은 채 포드를 노려보았다.
그 안 있던 것은 인간의 형체가 아니었다.
포드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눈부신 은색 빛무리가 천천히 흩어지고, 그 중심에는 성인 남자의 팔뚝만 한 은색 알이 놓여 있었다. 알의 표면은 광택이 흐르는 매끄러운 은빛 비늘로 덮여 있었고, 미세하게 진동하며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수억 년 전의 비밀을 품고 잠들어 있던 고대의 유물처럼 보였다.
"이게... 뭐야?"
칸의 목소리에는 경악과 동시에 실망감이 서려 있었다. 사람 대신 알이 나왔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술렁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갈증과 허기를 채워줄 존재가 아니었기에, 포드 안의 신비로운 광채에도 불구하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제이는 달랐다.
제이는 그 알을 보는 순간, 무의식 속에서 보았던 어린 은색 용의 잔상과 그 목소리가 뇌리를 스쳤다. 희망은 밖에만 있지 않아. 그의 심장이 쿵, 하고 크게 울렸다. 그 알은 자신을 구하려다 다쳤던 어깨의 통증마저 잊게 할 만큼 강렬한 끌림을 선사했다.
제이는 떨리는 왼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알을 감쌌다. 알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고, 미세한 온기가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심장이 알 안에 들어있는 것처럼, 제이는 알의 미세한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제이는 알을 두 팔로 안아 들었다. 알은 제이의 품에 쏙 안겼다. 그는 이 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의 기억 속에는 알을 보듬는 방법 따윈 없었다. 하지만 본능은 이 알이 절대로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칸이었다.
"젠장! 사람도 아니고 알이라고? 우릴 놀리는 거야? 이거 하나 열려고 그 난리를 피운 거냐고!"
칸의 얼굴은 분노와 좌절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이빨을 드러내며 제이에게 다가왔다.
"비켜, 제이. 그거 이리 줘."
"안 돼. 이건..."
"이거라도 먹어야 살 거 아냐! 보름달 크기만한 용 알! 저거 깨면 안에 노른자든 뭐든 피 같은 게 있을 거 아니야! 최소한 이틀은 버틸 수 있을 거야!"
칸의 제안에 아이들의 눈이 번뜩였다. 3일 가까이 물 한 모금, 음식 한 조각 입에 대지 못한 아이들은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은색 알의 신비로운 광채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생존'이라는 이름의 단백질 덩어리만이 보일 뿐이었다.
"맞아! 저거라도 먹어야 해!"
"살고 싶으면 이리 내놔!"
"제이! 너 혼자 살 생각이야?!"
아이들은 제이에게 달려들었다. 칸은 철근을 휘두르며 제이에게 길을 비키라고 위협했다. 레온은 다친 다리를 끌며 그들을 말리려 했지만, 굶주린 아이들의 광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안 돼! 이건... 이건 먹으면 안 돼!"
제이는 알을 품에 더 단단히 안았다. 알은 그의 품속에서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때였다. 제이의 머릿속에 다시 한번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안 돼… 조금만 기다려….]
그것은 무의식 속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였다. 경고이자 간청. 제이는 목소리가 자신에게만 들렸다는 것을 알았지만, 본능적으로 레온에게 물었다.
"레온! 너도 들었어? 방금 그 소리!"
레온은 턱이 빠진 듯 멍하니 제이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피로와 좌절, 그리고 이제는 제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만이 가득했다.
"제이... 너도 미쳤냐? 무슨 소리? 아무것도 안 들려!"
레온의 대답에 제이는 절망했다. 이 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그를 짓눌렀다. 칸과 아이들은 이미 이성을 잃은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제이를 둘러싸고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