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을 차려보니 집어 던진 술병 조각에 손을 다친 채로 피를 뚝 뚝 흘리고 있었고, 그 피가 흐르는 손가락 사이에 누가 말아준 건지 대마초로 보이는 연초가 끼워진 채였다. 그러나 짭대마를 금방 피운 상태인지 아직도 반쯤 정신이 나가 이상하게 다친 손이 아프지도 않았다.
거의 눕듯 바닥에 주저 앉아있는데 어디서 찾아온 건지 여자애들이 한 둘 씩 나타나 나를 일으키고는 다친 손을 닦아주는 것이었다. 어디서 돈 냄새 맡은 듯이 들러붙어 끼를 부려대는 게 우스울 만큼 꼴사나웠다.
고신, 나가자. 내가 약 발라줄게.
어설프게 일어나 테이블 끝에 삐딱하게 앉아서 술병을 집어 던졌다. 얼마나 더 소리를 질러 댔던 건지 비키라고, 꺼지라고 화를 내자 곧 그 애들은 떨어져 나갔고 잠시 정신을 잃었다 깬 사이 곧 또 누군지 모를 이의 손에 밖으로 끌려 나와서는 거의 던져지다시피 팽개쳐졌다.
그러다 잠깐 또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니 내가 보도블록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아 나 왜 이러고 사냐, 누가 억지로 이렇게 살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렇게 취하면 기분이 너무나 엿 같아진다. 손에서는 여전히 피가 뚝 뚝 흘러내리고 있었고, 셔츠 소매 부분이 불썽사납게 그 흘러내리고 닦아낸 피로 물들어 있었다. 얼핏 잘못 보면 셔츠의 패던 모양인가 싶으 ㄹ정도로.
그 피 묻은 손으로 덜덜 떨며 필터 없는 연초를 계속 빨았다. 자꾸 의식 없이 욕이 튀어나오는 걸 막아야 했다. 뒷맛이 상당히 구리고 떨떠름하다. 이걸 누가 줬었지? 가물가물했다. 그냥 더 이상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하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연초를 다 태우고 바닥에 버리자마자 택시를 타서 신림동으로 향했다.
신림동의 암울한 불빛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기분도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난 일 년은 커녕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다시 그 망나니 같은 짓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바라던 증명도 못 할 거고 엄마가 원하던 정제도 아마 되지 못할 것이다. 두 분이 선심 쓰듯 준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또 날려버릴 것이다.
탁하고 오염되고 쓰레기 같이 살다가 누군가에게 맞아 죽지 않으면 다행이지. 영화는 영화일 뿐 거기 나오는 방탕한 주연처럼 화려하게, 멋있게 주목받으면서 추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끝이 나면 다시 시작해볼 수 있나, 그런 철학적인 고민이 드는 것도 귀찮았다.
공부에 업무에 그런 하루 일과가 지친 이들을 유혹하는 불빛들 아래로 제일 타락한 이가 비틀거리며 그 수척한 대열에 끼어들었다. 목적은 뚜렷하나 퀭 해 보이는 인상을 주는 이들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피를 몇 방울 씩 바닥에 흘리며 같잖게 느와르 영화에 나오는 비운의 킬러에 빙의해서 느릿하게 걷는다.
아, 내려도 하필 여기서 내리냐.
익숙한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빌어먹을. 나는 시발, 하고 읆조리며 건물을 올려다봤다. 학원이었다. 학원을 보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밀려든다. 순식간에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 학원 입구 앞에 고꾸라졌다. 몇 몇 이들이 수군거리며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시선은 익숙하다.
그 앞의 계단에 주저앉아 미친 척 포켓에 넣어둔 연초를 꺼내 피웠다. 풀이 타자 구린내가 사라진다. 피 묻은 명품 셔츠를 입은 채 주저앉아 시가 같은 걸 태우는 젊은 남성을 욕하는 것이 들린다. 세상이 말세네. 맞다, 말세. 근데 이렇게 살아도 재미 없는데, 물론 당신들 보다야 낫겠지만. 배부른 소리겠지. 살고 싶지 않다는 게 재미가 없다는 말로 치환이 되는 구나. 갑자기 웃음이 났다.
다시 시작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헛된 꿈에 부풀었던 적도 있다. 처음엔 웃었는데 나중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약을 하면 뇌가 망가진다던데, 정말 제대로 맛이 가고 있나보다. 그런 생각하니 또 웃음이 날 것 같고 여러모로 내가 미쳐버린 것 같았다.
그런 내게 누군가 다가왔다. 아마도 환각이었으리라.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본격적으로 미쳐서 살게 된 건지 생각해보다 갑자기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으니까. 그 애를 아직도 내가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진짜 미친 것이다. 차라리 어중간하게 말고 완전히 미쳐버렸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죄책감에 내가 이런 후회를 해야 되는 거지? 병신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싫다. 손가락 사이에서 타들어가는 연초를 내려다 봤다. 맨날 빌붙어서 술이나 얻어먹던 그 놈이 이번에 준 건 진짜 대마초가 맞나 보다. 근데 대마초 몇 번 피운다고 환영까지 보일 리가 없는데, 이게 뽕도 아니고.
눈을 비비고 다시 내 눈 앞에 있는 환영을 골몰히 주시했다. 그리고 그 환영의 입이 벌어지는 걸 멍하게 쳐다봤다. 눈가가 흐릿해서 처음엔 눈 앞에 있는 걸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꼴이 이게 뭔데."
눈 앞이 막 맑아지면서 동시에 그 목소리가 내게 꽂혔다.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목소리. 눈 앞의 환영은 소름끼치게도 엔젤의 목소리를 똑같이 재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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