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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st] 8

8
  • 조회수5
  • 작성일02:11






나는 그게 환영은 아닐까 생각했다. 거기에 엔젤이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너무 많은 기억들과 감정들이 쏟아져 아주 잠깐 현기증을 느꼈었다. 또 다시 그 때처럼 여러 감정과 기억이 교차되는 가운데 갑자기 뜬금없는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말했던 그 남자의 아들이 물려받은 회사가 부도가 났다던가, 파산 직전 이랬던가. 요즘 같은 시대에 공CD제조를 하는 회사가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얼핏 엄마가 통화를 하면서 흘리던 이야기다. 



아, 아닐 수도 있다. 내 기억력이 그정도였다고? 꼴이 이게 뭐야, 는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엔젤은 놀랍게도 교재로 보이는 책을 품 안에 안고 딴엔 꽤 수수한 파림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그게 이상해서 다시 풀려가는 눈에 힘을 주고 올려다봤다. 인정하기 싫지만 저런 껍데기를 가진 이는 대한민국에 흔치 않다. 저렇게 싸가지 없는 말투로 내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용도, 나를 말 한 마디로 병신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세 조건에 다 해당되는 게 엔젤 뿐이라는 게 내 결론이다. 환각이든 뭐든.





고신 : "야, 니 꼴은."





팔을 휘둘렀다. 가끔 독한 약에 취해 헛것을 보는 애들이 하는 습관이다. 진짜인지 확인하려고. 남을 의심하는 버릇이 생기면서 녹음을 하고 허공을 휘저어 실체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 그렇게 허공을 느릿하게 가르던 피 범벅이 된 내 손 끝에 엔젤이 닿았다. 정확히는 엔젤이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는 그 교재에. 








대기업의 총수들이 보면 코웃음 칠 이야기지만 나름대로 은수저 이상에 해당하는 부자들도 자기네들끼리 진 밥알처럼 아주 잘 뭉쳐든다. 친하지도 않으면서, 비슷하다면 재산의 규모 뿐인 그들은 각기 다른 출시 성분을 숨긴 채 잘 어울렸다. 



아버지가 엔젤의 아버지를 싫어하는 것처럼 엔젤의 아버지도 내심 졸부면서 그 모임에 끼어들려고 하는 아버지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을 지 모를 일이었지만. 쨌든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면 겉으로는 썩 잘 어울리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그의 가족에게서 엔젤이 보였다. 엔젤은 제 아버지를 닮아 키가 아주 컸고, 제 어머니를 닮아 얼굴이 상당히 예쁜 축에 속했다. 게다가 꼭 그 모임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화한, 그러나 학습된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살갑게 굴고 있었다. 어느 틈에 그 도도한 게 그런 걸 학습해버린 것이다.



매번 그 모임에 참석한 모양인지는 몰라도 엔젤은 이미 나와 달리 부모님 하는 일에 고분고분 했던 내 친누나들과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것 같았고, 예전에 보여줬던 상냥한 부회장의 모습처럼 굴고 있었다. 단 한 사람 나를 제외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내게 간혹 엔젤의 눈길이 닿는 게 느껴쪘지만 일부러 나는 엔젤이 나를 쳐다볼 때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그리고 내가 엔젤을 쳐다볼 땐 엔젤은 다른 이와 대화 중이었다. 그렇게 떨어져 있는데 그 때처럼 바짞 붙어 마주보고 앉아 묘한 기류에 압도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임이 끝나갈 무렵 반쯤 취한 내가 엔젤에게 먼저 다가갔다. 나는 술만 먹으면 누군가를 들이받고 싶어 미치니까. 그냥 엔젤을 자극해서 뭘 확인하고 싶었나. 예전처럼 내게만 흐트러진 모습을 드러내길 바랬는지, 아니면 화를 내길 바랬는지. 





고신 : "기가 막힌 우연이네."



살풋 접어 웃는 눈웃음에 곧 내가 먼저 동요하기 시작했다.



엔젤 : "잠시만. 우리가 아는 사이였나?"





엔젤은 외면하지 못하게 예쁜 얼굴로 생글거리면서 말투는 소름끼치도록 차가웠다. 거기에 내가 뭐라고 대꾸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잠깐 짧고 강렬한 충격을 받았을 뿐. 그 뒤로 완전히 취해버린 뒤 누나들에 의해 아버지의 차로 옮겨졌다. 그 뿐이었다.



나는 오피스텔을 얻어 강남 근처에 자리 잡고 본가에 어지간하면 얼씬거리지 않았다. 같잖게 기웃대며 일 년에 두 세 번 한다던 그 모임을 기다리는 내 모습이 예상되어 돌아버릴 것 같았으니까. 독립을 한 그 날부터 유학 시절처럼 뭔가에 취하면 어김없이 떠올랐다. 텅 빈 복도 별 것 없는 노을 속에서의 그 애가, 우리의 침묵 속에 흐르던 감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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