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모임에서 우연히 엔젤을 만난 뒤 얼마나 시간이 지나버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공백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이상하게도 점점 약발을 받아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피식 피식 웃음이 나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엔젤이 팔을 잡아 일으킬 때도, 내 손에서 피가 흐르는 걸 보고 인상을 쓰는데도 나는 진짜 미친놈처럼 웃고 있었다. 엔젤이 뭐라고 한 마디라도 내게 시비를 걸더라도, 그것마저 수용할 기분이었다.
그러나 엔젤은 별 말 없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따라오라는 말 한마디 없이도 나를. 그렇게 처음 나를 데려가 주차하듯 세운 곳은 편의점 앞이었다.
"잠깐 기다려."
나는 파라솔이 접힌 테이블에 앉아서 내 다친 손바닥을 멍하게 쳐다봤다. 하나도 아프지 않은데 피가 영 멎질 않는다. 계속 히죽거리고 있자 진짜 미친놈으로 본 건지 덩치 좋은 남자들이 대놓고 나를 힐끔거리고 지나갔다. 뭘 봐? 히죽 웃으면서 한 마디 하자 같이 욕으로 받아치며 사라졌다. 그리고 곧 엔젤이 붕대와 연고를 사서 나타났다. 아무 말 없이 내 손에 약을 바르면서 뭐라 중얼거렸다.
엔젤 : "너 완전히 망가졌다는 소문은 들었어."
고신 : "아니야. 열심히 살아, 나도. 공무원 시험 준비도 하면서, 너처럼."
툭툭 교재를 건드리자 엔젤이 건들지 마, 하고 차갑게 내뱉었다. 그럼에도 나는 히죽 웃음이 났다. 내가 공무원 시험이라니 웃기지 않아?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긴 건지 그 애에게 동조를 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곧 엔젤이 나를 등진 채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따라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엔젤을 따라 일어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들뜨기 시작했다. 퍽 약을 할 때와 비슷한 전조증상이었다. 나는 서둘러 바늘 자국이 있는지 내 팔을 살폈다. 아무 자국도 없다. 그럼에도 약에 취한 이처럼 정신이 반쯤 나간채로 엔젤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비틀 비틀 걷는 나의 걸음이 엔젤의 여전히도 도도하고 큰 보폭에 맞추는 게 쉽지 안았고, 그 애와 나 사이의 거리가 좀 벌어졌을 때 나는 그냥 되는대로 보도블록에 주저 앉았다.
엔젤! 야! 주변이 울리도록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엔젤의 그 걸음이 멈춰졌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양 쪽 고막과 망막까지 아려왔다. 손바닥으로 나도 모르게 보도블록 끝을 짚었다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얼굴을 구겼다. 웃음이 나야 되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뭔 소문이 그렇게 빨라. 누가 나 망가졌대? 망가진 건 맞지만.
손바닥을 끌어안고 내가 징징대는 투로 중얼거렸다.
고신 : "나 좀 데려가."
엔젤 : "난 쓰레기 같은 거 안 주워가."
그렇게 하면 여자들은 나 주워 가던데, 쓰레기라는 걸 알면서도. 엔젤에게 끼를 좀 부리는 건가. 술에 취한 건지 약에 취한 건지 정신이 없었다. 자꾸 히죽 웃음이 나고 괜한 용기가 막 솟아올랐다. 억지를 부리고 싶었다. 자꾸 들떠가는 마음에 심장까지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의식하자마자 괴로울 정도라서 외면하고 싶은 통각이었다.
차라리 누가 날 좀 죽여줬으면 좋겠어.
고신 : "이렇게 다친 용을 두고 그냥 가냐? 정 없다."
엔젤 : "우리 사이에 정이라 할 만한 게 있긴 했나."
고신 : "더한 게 있지 않나?"
엔젤 : "닥쳐."
진짜 엔젤이 맞을까. 내가 만들어 낸 환영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그 정도로 엔젤을 생각했던 건가 고민해봤다. 그러면서 손을 휘저었다. 닿을 거리도 아닌 걸 알면서.
생각을 오래 할 것도 없다. 너는 나를 모르는 용이라고 했는데, 말도 안 되지. 내가 아직까지 너에게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는 게. 근데 내가 왜 이러고 버티고 있을까. 그건 오래 생각하지도 못했다.
일단 무작정 엔젤을 붙잡고 늘어지기로 했다. 이대로 내가 그 암울한 오피스텔로 들어가 잠이 든다면, 다른 날보다 더 오래 괴로워하다 잠이 들 것 같다. 마치 진짜 엔젤인지 확인을 하려는 이처럼 손을 뻗으며 주춤주춤 다가서자 또 손이 닿았다.
"미친 거야?"
낮은 목소리에 갑자기 무섭게 뛰던 심장이 멎는 느낌이었다.
고신 : "이러지 마. 내 상태를 봐."
미친놈처럼 히죽거리고 있는데 엔젤은 밥 잘 먹다가 돌 씹은 이처럼 굳어있다 곧 침이라도 퉤 하고 뱉을 얼굴이었다. 거리가 아주 많이 좁혀지고, 나는 괜히 내 손에 막 감겨진 붕대를 들어 보였다. 휘저으면 얼굴이 닿을 것 같다. 피가 멎은 건지 핏자국이 보이지 않았고 엔젤은 내가 그러고 있든 말든 팍 인상을 쓰며 내 두 눈만 똑바로 쳐다봤다.
우리 사이에 또 침묵이 흐른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기류가 흐르던 침묵. 그래도 나 많이 변했어. 여자들이 그렇게 쳐다보는 것도 익숙해. 너 진짜 쓰레기네, 말 하지 않아도 다 안다. 알아, 나도 내가 미친놈 같다는 거. 미친 건가, 그런데도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 웃음이 나서 계속 웃었고 내 웃음에 엔젤이 가차 없이 고개를 돌리며 따라와, 하고 낮게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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