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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st] 12

8
  • 조회수11
  • 작성일02:25






엔젤 : "집에서 쫓겨났어?"


고신 : "어. 완전."





가끔 술에 덜 깬 채로 주방인지 거실인지 모를 바닥에 누워있으면 엔젤은 책상에 앉아서 어쩌따 한 번씩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술이 덜 깨서 머리가 좀 어지러웠고 속이 더부룩해서 그 얘기를 건성으로 듣다가 장난으로 받아치며 키득댔다.



우리는 잠시간 우리에게 일어났던 모든 과거의 일들을 잊은 용들처럼 굴었다. 다행스럽게도 엔젤은 감흥 없이 한 두 마디 주절거리곤 금방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술에 취하면 왜 꼭 자신을 찾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 좁은 책상에 앉아 뭔가에 몰두하는 엔젤을 쳐다보고 있으면 거짓말처럼 산란한 머릿속이 맑아졌다. 맞아, 너 전교 10등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다고 했지. 얼굴 말고 표정으로만 기억하는 담임이 원어민과 대화를 하는 수준이라고 칭찬했던 것이 생각났다. 굳이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엔젤이라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넓을 텐데, 뭐든 그렇게 열심히 하는 편인가. 



내게 시선 하나 나눠주지 않던 엔젤은 내가 정신을 차리고 집에 갈 때까지 꼼짝 하지 않고 책상에만 붙어 앉아있었다. 잠을 자긴 할까. 왠지 엔젤이라면 그 어렵다던 공무원 시험 문턱도 쉽게 넘어버릴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엔젤을 쳐다보고 있으면 엔젤이 가난한 여대생의 배역을 맡은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근데 변해버린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태연하게 미래를 준비하기엔 엔젤은 아직 너무 어린데, 그런 연민이 자꾸 취기를 지워낸다. 술이 깨버리면 여기에 더 있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언제부턴가 아예 취하기로 작정하고 술을 먹었던 것 같다. 엔젤의 집을 찾으면서 내 패악질도 줄었고, 마치 신데렐라가 된 것처럼 술만 취하면 사라져버리는 나를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오후까지 숙취가 남아있으면 더 좋았다. 도저히 맹전신으론 엔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머리가 맑아지면 가슴 안쪽에서부터 통각이 느껴지고 기침이 터져 나왔다.










굳이 집을 찾지 않아도 가끔 내가 아버지 눈치를 봐서 학원을 찾으면 엔젤은 늘 거기에 있었다. 푹 절어진 우거지들 사이에서 막 피어난 장미꽃 같은 엔젤은 그 혈색 좋은 얼굴로 정말 열심히도 강의를 들었다. 그걸 쳐다보고 있자니 엔젤의 집안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재기는 불가능 할 거라고 말했던 엄마의 말을 돌이켜보면 엔젤이 안정적인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택하는 게 필연처럼 느껴졌다. 



강의가 끝나면 엔젤은 학원 내부와 연결된 같은 건물의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거의 절반 쯤 구겨진 채 수업을 듣다가 엔젤이 일어나면 미적거리며 따라 일어서 학원 밖을 나갔다. 그런 날이었다. 엔젤과의 재회가 내게 어떤 동기를 가져다주는 건지 잘 알지 못했다. 되도록 술에 취해 몽롱한 상태이면 좋을 것 같았다. 





엔젤 : "그러고 앉아있을 거면 차라리 학원에 오지 않는 편이 낫지 않아?"





손바닥에 흉이 졌다. 책상에 앉은 엔젤이 다시 턱을 괴고 책을 내려다보고, 나는 손바닥을 허공에 들어 펼쳐봤다. 즉각 병원에 갔더라면 안 남지 않았을까. 누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처럼 길게 그어진 흉터가 내 짧은 생명선을 연장시켰다. 오므렸다 펼치는 걸 반복하면 약간 당기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병신처럼 그러고 있으니 도로 책으로 돌려버린 엔젤의 시선이 다시 내게 닿진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엔젤은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게 시선을 나눠주지도 않았다. 



나는 제 집처럼 엔젤의 집에서 씻고 말끔해진 모습으로 집을 나섰다. 반지층 계단을 밟아 지상으로 올라서면서 다시 허공에 내 손바닥을 펼쳐봤다. 아무래도 그 날 엔젤을 따라갈 게 아니라 병원을 갔어야 했나 보다. 괜히 생명선을 길어지게 만들었다.



약간은 비틀대며 걸으면서 다신 엔젤의 집을 찾지 않겠다고 다짐해봤다. 늘 그런 종류의 다짐을 수도 없이 하곤 한다. 술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 하진 않지만 술 먹더라도 시비 걸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다짐은 술에 취해버리면 소용이 없다는 걸. 



세상이 만만한 나머지 이제 시시하기까지 하다면서 테이블에 앉은 이들 중 제일 모난 얼굴로 시비를 걸고 화를 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니 점점 누군가에게 멱살을 잡힌 채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 무감각해진다. 무섭게 생긴 그 남자가 공공장소만 아니었으면 죽을 때 까지 팼을 거라는 둥 말을 해도 겁이 나지 않았던 건 취해서 그런 걸 것이다. 








술에 취한다. 다짐이 흐려진다. 다른이들에게 시비를 건다. 싸운다. 엔젤의 집을 찾는다. 


내게 새로운 루틴이 생겨버렸다. 더 이상 여자를 꼬시려 눈웃음을 치지 않는다. 눈을 떴을 때 처음 보는 호텔룸의 천장이 먼저 보이는 게 아니라 곰팡이를 닦아내 희미하게 얼룩진 낮은 천장이 먼저 보이고 고개를 돌리면 책상에 앉아 턱을 괴고 골몰하는 엔젤의 옆모습만 보인다.





고신 : "야."


엔젤 : "왜?"


고신 : "그냥 같이 살래? 여기 너무 습하지 않냐?"


엔젤 : "........"





아마도 술기운이 절반 이상은 남아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고개를 돌리고 그 말부터 뱉었다. 그런 말 정도는 해야 책에 붙은 엔젤의 시선을 내게 뺏어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마 한 시간 뒤 쯤에나 후회할 지도 모를 일이었고 엔젤은 예상했던 대로 직후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아주 가만히. 



엔젤의 그런 시선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시간을 거슬러 많은 변화에 혼란스럽던 그 시기, 앞에 없어도 그려지던 엔젤 때문에 복잡함을 느꼈던 그 때와 같다.





고신 : "너나 나나 같이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입장이잖아."





사실 나는 공무원시험 일정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핑계로 엔젤을 내게 묶어두어야 할 이유 같은 것도 없었다. 이미 내가 술에 취하면 영양가 없는 헛소리를 주절댄다는 걸 알아버린 듯 엔젤은 잠시 그런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가 가차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들어줄 가치도 없다는 듯,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



엔젤의 차가운 얼굴을 볼 때마다 내 얼굴은 뜨거워진다. 열기가 이마까지 오르면 다시 취해버린 듯 어지럽기 시작한다. 맑아졌을 때 하지 못할 말들이 취기가 오르자 뱉고 싶어진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움켜쥐며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은 엔젤에게 다가섰다. 엔젤의 방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은 최초일 것이다. 잠깐 내가 그 사실을 자각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엔젤이 신경질 적으로 자신이 보고 있던 교재를 덮었다.



얼굴이 너무나 싸늘했다. 꽉 입을 깨물고는 뭔가를 견뎌내는 것 같았다. 








엔젤 : "너 아직도 내가 만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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