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NGS
24화
창밖을 메웠던 드래곤들의 처절한 비명도 어느새 잦아들었다. 영역 다툼을 벌이던 포식자들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입힌 채 멀리 떠나갔거나, 혹은 더 깊은 폐허 속으로 숨어든 듯했다. 지옥 같은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기묘할 정도의 정적이 찾아왔다.
"일단... 놈들이 간 것 같아. 지금이 기회야. 다들 조금 쉬자."
레온이 긴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해방된 아이들은 그제야 다리가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레온은 구석에 숨겨두었던 소중한 생수 한 병을 꺼내 들었다.
"이건 아껴 마셔야 해. 하지만 방금 다들 고생했으니까..."
레온은 생수병 뚜껑을 열어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컵에 물을 나눠주었다. 맑은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칸 역시 이번만큼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남겨두었던 육포 8팩을 꺼내 아이들에게 한 조각씩 공평하게 배분했다.
"자, 먹어 둬. 시스템이 강화되면 이제 진짜 싸워야 할지도 모르니까."
칸의 투박한 배려에 아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육포를 씹었다. 짭짤한 고기 맛과 시원한 물 한 모금. 이 보잘것없는 간식 시간이 이들에게는 그 어떤 만찬보다 소중했다.
제이는 잠든 실버윙의 입가에 물 한 방울을 적셔주며 녀석의 체온이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녀석의 비늘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이 아까보다 한결 안정되어 있었다.
어느 정도 허기가 가시고 로비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돌 무렵이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상태창이 보여줄 새로운 힘에 대해 들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활기찬 풍경 속에서 오직 한 사람, 레온만은 예외였다.
레온은 멀찍이 떨어져 창밖의 폐허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안경 너머로 비치는 눈동자는 깊은 심연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한참 동안 무언가를 고민하던 레온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제이에게 다가왔다.
평소의 차분한 걸음걸이였지만, 그의 등 뒤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유독 길고 어둡게 느껴졌다. 제이는 실버윙을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레온을 올려다보았다.
"제이...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단둘이서."
레온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고, 그 안에는 단순한 걱정을 넘어선 거대한 공포와 결단이 서려 있었다.
제이는 심장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상태창의 진화와 실버윙의 기적이 가져온 이 짧은 평화 아래, 레온은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 치명적인 진실을 발견한 듯했다.
레온이 제이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려는 찰나, 로비 중앙에서 강화 중이던 상태창의 구체가 불길한 보랏빛으로 한 번 번쩍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