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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st] 14

10
  • 조회수24
  • 작성일2026.02.21






아버지의 선택지가 잘 못 됐다. 유학을 가자마자 내 반항심은 막 불을 붙인 폭죽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올라 팡팡 터지기 시작했다. 내 인생을 망가뜨리는 방법을 구상하는 이처럼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만나면 위험하다는 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유학생들은 공통점이라곤 스스로를 파멸하는 데에 몸이 달았다는 것 밖에 없으면서 국경 없이 섞여 들어 서로에게 나쁜 것들을 침투시켰다. 결국 나는 아버지가 원했던 주립대학에 입학하지 못했고 시간 낭비, 돈 낭비만 하며 망가진 채 미국에서 유학생 신분으로 버티다 결국 다시 한국으로 끌려 들어왔다.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리면서 거의 쫓겨나다 시피.



겨우 서울의 대학에 입학하긴 했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건 똑같았다. 아버지의 졸부 커리어에 나는 오점이고, 내가 이렇게 굴수록 아버지가 졸부라서 그렇다는 결과만 부각이 된다. 졸부의 자식들은 다 그렇지. 



아버지의 아킬레스건, 어쩌면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게 생각한다고 변하는 건 하나도 없겠지만. 








당연한 일이지만 술이 깨자마자 나는 엔젤에게 했던 행동과 말들을 후회했다. 그런 상태로 엔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학원도 나가지 않고 취한 채로 찾아갈까봐 술을 마시지도 않고 신림동 오피스텔에 처박혀있었다. 술에 취해서 그 집을 찾는다는 건 정말 핑계였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그 집을 찾아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술을 마시고 가기엔 정말로 늦은 시간이었다. 몇 번이나 유턴을 하고, 그 유턴의 유턴을 지독히 반복하며 긴 삽질 끝에 처음으로, 맨정신으로 엔젤의 집을 찾았다. 



엔젤이 사는 골목 안쪽 건물 앞엔 가로등마저 깜빡이면서 제대로 켜지지도 않았다. 음산한 지층 계단 아래 희미하게 깜빡이는 가로등 불빛의 기운이 닿았지만 깜빡이는 대로 어두워졌다가 미세하게 밝아졌다.



센서등 마저 들어오지 않는 현관문 앞 엔젤은 이 길이 무섭지 않았을까. 왜 하필 골라도 이런 누추하고 으슥한 곳을. 내가 매번 취한 채 찾아왔다는 사실들 보다 엔젤이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하다 이런 곳에 기어들어온다는 사실에 성질이 났고, 그 덕에 고민도 없이 몇 번을 그 문을 걷어찰 수 있었다.



당연히 내가 취했을 거라고 생각한 엔젤은 문을 열고는 나를 보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앉았다. 욱하는 마음은 도통 잦아들지 않았다. 이 시간에 늘 취해서 싸우고 화내고 깽판 치는 것이 학습이 되어 있는 뇌가 화를 낼 핑계를 찾는 것 같기도 했다. 냉장고를 열어 유통기한이 지난 밍밍한 맥주를 꺼내 마시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 였다. 



엔젤은 그런 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듯 그저 책상에 조용히 앉아 하던 공부를 했고 그런 상태로 잠이나 자, 하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고신 : "너랑 같이 있고 싶다고 하면 믿어 줄래?"





말이 이상하게 목구멍에 걸려서 잘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가늠하는 듯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엔젤의 눈이 잠깐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곧 가차 없이 고개를 돌려 거치대 위에 놓인 아이패드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엔젤은 그 상황에서도 집중과 몰입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 밍밍한 맥주가 나를 취하게 했다는 핑계를 대고 싶다. 패드 화면 속의 누군가가 열심히 칠판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1.5배의 속도로 쏟아내는 강의 속에 김언이설이 묻어난다. 이 강의만 꾸준히 보기만 해도 합격을 할 수 있다는 듯이. 



학원을 막 다니기 시작했을 때 아주 멀찍이 낡은 칠판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괄괄한 목소리의 강사의 말투와 비슷하다. '피곤하시죠? 우리 잠깐만 죽었다고 생각합시다, 잠깐만.' 언제까지 이 습한 곰팡이의 그늘이 있는 반 지층에 엔젤이 있어야 될까. 이렇게 하면 엔젤이 7급 공무원이 될 수나 있는 걸까. 



엔젤이 그 간절함을 저당 잡힌 다른 이들과 같아지는 것이 자꾸만 내 기분을 수틀리게 만든다. 그 우거지상으로 앉아있는 무리들 속에 한 떨기 꽃처럼 앉아 있다가 밥을 먹는지 마는지 늦은 밤까지 독서실에 박혀 있곤 가로등 불빛도 제대로 닿지 않는 골목의 반지층에 엔젤이 있다는 게 도무지 말이 안된다. 





고신 : "방해 안 할게."


엔젤 : "방해란 단어 뜻은 알아? 지금 네가 하는 짓이 방해라는 거야."





엔젤이 뭔가를 더 말하려 할 때 끝내 내 입으로 제발, 이라는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내가 뱉은 그 '제발' 에 놀라서 내가 얼마나 이 상황에 쓸 데 없이 몰입하면서 병신같이 굴었는지 깨달았다. 



취한 척 억지로 웃었다. 내가 웃자 엔젤이 진지하게 굳은 표정으로 내 웃음을 살폈다. 내 속을 눈치채지 못하게 고개를 돌리자마자 엔젤은 냉장고 앞의 베개를 집어 던졌다. 평소 취해서 엔젤을 찾았던 나는 그런 식으로 굴었던 모양이었다. 



취했으면 그냥 자, 제발. 엔젤이 제발에 굳이 엑센트를 줘가며 말하는 걸 느끼며 나는 느릿하게 바닥에 누웠다. 그렇게 천장의 어떤 부분을 계속 쳐다보자 평소의 양아치같고 개망나니 같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의미 없이 하는 헛소리, 괴팍한 습관, 아무한테나 무례하게 던지는 시비. 그래 지금 시간이면 내가 한참 술에 잔뜩 취해서 또 누군가에게 괜한 시비를 걸고 있을 시간이다. 적어도 이렇게 엔젤의 집, 그것도 거실인지 주방인지 모를 딱딱한 바닥에 누워 헐거운 이불 하나 덮고 있는 것 보다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생각하는 동안 엔젤의 스탠드가 꺼졌다. 부스럭 거리던 엔젤이 내 몸을 건너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에 물을 틀었다. 시원찮은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답답한 세면대에서 씻는 것도, 그 앞에 얼룩이 묻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도 눈앞인 듯 그려졌다. 가슴이 돌처럼 딱딱해지는 기분이 든다.





엔젤 : "너만 보면 화가 나서 갈증이 나."





그 말을 뱉은 엔젤이 냉장고 문을 여는 것이 보였다. 천천히 일어나 앉으며 화가 나 어쩔 줄 몰라하는 엔젤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싸늘한 공기만이 우리 둘 주변을 감돌았다. 



먼저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낸 엔젤이 캔을 따고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김 빠진 맥주 몇 모금에 얼굴이 빨개진 걸 생각하면 그럴 만 했다. 내가 먼저 기다렸다는 듯 맥주로 목을 축였다. 내게도 그런 갈증이 있었다. 



캔을 만지작거리면 느릿하게 입가로 가져가는 걸 쳐다보다가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미간까지 구겨가며,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간 건지 생각하며. 그러자 또 목이 탔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괴할 정도의 갈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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