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건물을 나서게 됐을 때 해가 완전히 떨어져 운동장에 세워진 LED 조명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위적인 불빛에 주변이 환해지면서 당혹스러워 허공에 손이 몇 번 감돌았다. 곧 엔젤이 그런 내 손을 붙잡아 왔다. 손바닥 안으로 끈적하게 땀이 차오르는 것이 신경 쓰여 손을 빼내 옷에 닦아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괜찮은데."
엔젤의 말에 급히 손가락 마디에 힘을 줘 깍지를 꼈다. 별 말 없이 약속이나 한 듯 운동장을 한 세 바퀸가 의미없이 빙글빙글 돌았던 것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공부를 못해요. 누군가를 가르치려는 말투로 또박또박 물어왔다. 또박또박 말을 하려는 것은 버릇 같아 보였다.
"나 우리 아빠 닮아서 머리가 나빠."
내 대답에 엔젤이 웃었다. 엔젤의 눈이 휘어지도록 웃는 걸 보는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크고 작은 학교의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엔젤이 짓고 있던 웃음은 정말로 누구에게나 온화한 딱 부회장 같은 웃음이었으니까. 전혀 즐겁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는 미소였는데.
신기하게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가 땀이 묻어나는 손을 옷에 닦고 다시 손을 잡았다. 내 손을 살짝 쥐어보는 손가락이 너무 가늘어서 더 힘을 주면 부러질 것 같아 조심히 손을 겹쳤다.
엔젤 : "진짜 소문처럼 됐네."
고신 : "그러게."
엔젤 : "이상하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고신 : "난 하나도 안 자연스러운데."
엔젤 : "쪽팔려요?"
고신 : "응."
엔젤 : "보기보다 순진하시네, 선배님."
고신 : "보기엔 어떤데?"
엔젤 : "완전 양아치 같은데."
감정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나는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나는 남은 시간을 모두 엔젤에게 털어버리려 작정한 용처럼 굴었다. 내 유학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 애가 내 속도를 맞추는 것을 버거워하는 걸 알면서도.
내가 유학을 가고 싶지 않은 이유에 엔젤이 있는 거면 어떡해야 되지. 혹시 내가 얘 때문에 아프게 되면 어떡하지. 달뜬 감정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엔젤이 들을까봐 걱정이 됐다. 맥박으로 전해질까봐 괜히 손을 잡을 땐 더 힘을 줬다. 시간을 아까워하는 나를 보면서 내 감정이 한순간의 충동이 아니라는 것만 깨달아갈 뿐이었다.
고신 : "그 땐 뭘 그렇게 보고 있었냐?"
엔젤 : "하늘, 예쁘잖아요. 난 예쁜 게 좋아요. 이 학교에는 봐줄만한 것들이 별로 없거든."
솔직히 처음엔 충동적으로 그 순간 잠깐 내게 이끌렸던 것인지, 아님 처음 봤을 때부터 쭉 혼란스럽게도 이끌렸던 것인지, 우리가 가끔 눈을 마주칠 때 마다 그 짧은 순간에 마음이 동요됐던 것인지. 결국 나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고, 이 순간뿐이라는 제약이 싫어서 회피해버린 이유도 있다. 곧 나는 유학을 가게 될 거고, 이 순간도 다 치기 어린시절의 우발적인 행동으로 기억해야 마음이 편하게 되겠지.
엔젤은 노을이 있던 자리를 쳐다봤다. 이 감정이 찰나이길 바라면서 영원하길 바라는 모순적인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왜 그런 순간은 항상 찰나일까? 묻는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 애도, 나도 상처 받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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