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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st] 19

10
  • 조회수16
  • 작성일2026.02.22






그래본 적 있어?


없는데.


어떤 기억을 생각하면 가슴이 견딜 수 없이 아픈 거.



미국에 있을 때 그런 일이 잦았다. 내가 콜록거리며 그 때의 통각을 똑같이 재연해내는 가슴을 쓸어내릴 때마다 중국 친구가 기억이 아니라 니 폐에 물이 차서 그런 거라며, 마리화나 연기로 가슴 안의 습한 기운을 날려야 한다고 말했다. 웃음도 나오지 않을 만큼 아팠지만 나는 꽤 익살그럽게 웃었다. 



그때 쯤 내가 대기업의 사생아라 미국으로 쫓겼다, 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문이 돌았다. 아픈 듯 괴롭게 가슴을 쓸어내리는 내 모습에 그런 사연이 덧씌워지니 우습게도 다른 이들이 더 들러붙어 못된 짓을 부추겼다. 더 망가질 것도 없다고 생가했는데 더 더 끝도 없이 타락했다. 



그렇게 되니 그 때를 떠올리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가슴의 통증도 잦아들었다. 신기했다. 정말 마리화나가 폐에 있는 물을 말렸나 봐. 언젠가 내게 웃으면서 마리화나를 건넸던 중국 친구는 부모님의 사업을 물려받을 거라고 북경으로 돌아가 버렸지만 정말 아주 가끔 그 통각이 상기 될 때면 나는 그 애가 말아준 것과 비슷한 종류의 마리화나를 침대 밑에서 꺼내어 태우곤 했다. 차고 넘칠 만큼 많은 마리화나를.








엔젤의 집을 찾는 것이 일상이 되어갔고, 그래서 그런지 엔젤은 내가 있으나 없으나 하던 일을 하고 나를 의식하지 않은 채 가끔은 나라는 용이 있다는 걸 잊어버린 듯 행동을 했다. 



가끔은 내게 말을 먼저 걸어올 때가 있긴 했다. 언젠가 내가 술에 취해서 마음에도 없이 공무원이 되지 못하면 정말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아르바이트 자리 구해야 될 지도 모른다, 같은 헛소리를 찍찍 하는 걸 신경 썼던 건지 시험에 대한 얘기나 학원에 대한 얘기를 할 땐 그랬다. 



정말 시험 칠 생각은 있는 거야? 엔젤이 재차 물었을 때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년 2월이면 채용 공고가 뜰 거고 일정이 뜰 거야. 만일 자신 없다면 괜히 다른 용 불편하게 하지말고 그냥 포기 해. 



말은 아닌데, 할 건데. 라고 했지만 나는 정말 내가 시험을 치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미 부모님의 귀에 내가 똑같이 살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 들어갔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 엄마는 가끔 사람을 시켜 내가 누굴 만나는지 뭘 하고 다니는지 알아보기도 하니까. 아마 또 본가로 끌려가지 않을까. 그 땐 아버지가 어떤 기회를 줄지 모르겠다. 



도피성 유학 실패자가 쫓기듯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한국에 있는 대학이라도 졸업하라며 또 기회를 줬다. 그 때도 마지막이라고 덧붙이면서 이번에도 졸업 못하면 정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으름장을 놨다. 결국 나는 한국에서도 졸업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거기선 교수와 시비까지 붙었고, 나보다 두 살 어린 동기들과 트러블이 잦았다. 익명 게시판에 나에 대한 이야기가 게시되어 교내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그런 전적이 있는 내가 얌전히 정제되어 공무원 준비를 한다는 게 당신들 생각에도 말이 안 된다고 판단되는 날이 금방 오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이런 핑계 같은 건 없어지게 되는데.



엔젤은 반쯤 눈이 풀린 나를 쳐다보며 넌 방해가 된다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방해 안 해. 말했으나 지금 하는 건 명백하게도 방해가 맞다. 엔젤의 시간을 자꾸 뺏으니까. 부리처럼 뭐라 말하는 입을 쳐다보다 얼른 눈을 감았다. 





엔젤 : "너 학원 여자애 건드렸다며."


고신 : "아, 뭐야. 그런 것도 알아?"


엔젤 : "여기 소문이 빨라."


고신 : "그건 진심이 아니었는데."


엔젤 : "언제 진심인 적은 있었어? 원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책임은 안 지잖아."


고신 : "무슨 방해 안 할게, 너는."





아마도 약속대로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한동안은 애를 썼다. 단순히 방해만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엔젤의 장단에 맞춰 엔젤이 듣는 강의를 같이 듣기도 하고 때론 독서실에도 따라가 시간을 죽이기도 했다. 엔젤은 한 번 자리에 앉으면 거기 붙박이가 되어 떨어지지 않았지만 방해를 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책을 들여다보며 건성으로 강의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내가 약간은 세탁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였다. 그러다 내가 지루해서 견디지 못할 때가 되면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엔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역시나 계산은 내가 했다. 그럼에도 엔젤은 당당하게 근처에 있는 맛집을 찾아 제일 맛있고 비싼 메뉴만 시켰다. 



그럼에도 보람 없게 엔젤은 많이 먹지도 못했다. 그나마 엔젤이 많이 먹는 게 있다면 그건 한우였는데 그것만은 대접받는 걸로 성에 차지 않는지 손수 구워서 먹었다. 작은 입 안에 커다란 고기를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족 모임에서 얌전하게 입을 오물거리며 식사를 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래도 그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리 사이에 조금이나마 대화가 늘었다는 것이다. 물론 한 주제로 대화가 오래 이어지진 않았다. 내가 산란하게 다리를 떨면 다리 떠는 걸 지적했다가 뭔가를 먹으면 내 식성에 대해서 지적했다. 그런 류의 대화가 이어지다보면 이미 식사가 끝나 있었다. 



심오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암묵적인 룰이었다. 





고신 : "왜 하필 공무원이야. 너라면 다른 것도 할 수 있잖아. 도와준다는 용이 없었던 것도 아닐 거고."


엔젤 : "누군가의 실패로 내 인생이 무너지는 느낌을 더 이상 경험하고 싶지 않아. 공무원은 제 발로 나가지 않는 이상 누군가 내치지 않아. 망하지도 않아.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은."





엔젤이 집게로 앞에 놓인 고기를 뒤집을 때 마다 연기가 날렸고 그 때 마다 엔젤이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요리조리 피하며 콜록거렸다. 



아, 내가 할게. 줘.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게 익숙지도 않았고 어색한 나머지 그 말을 해놓고 무안하여 연기가 닿지도 않았으면서 계속 헛기침을 했다. 괜히 머쓱한 웃음이 났다. 이런 간질거리는 감정이 너무나 낯설어서 팔에 닭살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너 기껏 합격했는데 한국이 망하면 어떡하지? 나의 농담에 엔젤이 설풋 웃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어. 엔젤은 씁쓸하게 그 말을 반복했다. 어쩐지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목구멍 끝에 한국이 망해도 내가 너 도와줄게, 라는 말이 걸려 빠져 나오지 않아 괜히 기침만 쉼 없이 뱉었다. 연기도 없는데 무슨 기침을 그렇게 하냐고, 엔젤의 말에 차마 폐에 물이 차서 그런 거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가슴이 간질거렸다가 칼로 저미듯이 아팠다.





엔젤 : "선배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고신 : "나 별 생각이 없는데."


엔젤 : "계속 그렇게 살 거야?"





더 이상 연기가 날리지 않아 엔젤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나는 한참 생각하다가 결국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았다. 고기를 집어 먹는 엔젤이 내게 소주를 달라고 했다. 술도 못 먹으면서. 반도 차지 않게 술을 따라주자 잔에 입만 갖다 댄 엔젤이 두 눈을 찡그리며 인상을 썼다.



그런 엔젤에게 갑자기 사과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의도치 않게 너한테 상처를 줬다면 나 좀 봐줄 수 없냐고. 내 마음에 남은 짐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나도 탈취된 채로 살 수 있겠다, 생각했다. 



곧 엔젤이 다시 소주를 한잔 따라 달라고 잔을 내밀었다. 잔을 따라주려고 소주병을 들었다가 무작정 그 손을 잡아버렸다. 소주잔이 탁 하고 불판 위로 떨어져 순식간에 연기가 눈 앞에 자욱해졌다. 연기 때문에 기침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틈에 엔젤이 내게 잡힌 손을 뿌리쳤다. 








계산을 하고 나서는 순간까지 후회했다.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기 시작한 엔젤에게 뭐라고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냥 앞서 걷게 두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집 앞까지 함께 걸었지만 엔젤은 처음으로 그 반지층 자신의 집에 완강히 나를 들이지 않으려 했다.





엔젤 : "너 그냥 집에 가. 나 취했어."



그 때 까지도 나는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떤 오해를 뛰어넘고 가까워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고기를 먹을 때 몇 잔 곁들인 소주로는 택도 없었을 텐데도 취기인 척 억지를 부렸다.



엔젤, 문 열라고. 



정말 쓰레기처럼 굴면서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그 앞에 더 서있었는지 모르겠다. 울컥하고 뭔지 모를 것들이 치밀어 올라 괜히 문을 걷어차며 너보다 내가 더 힘들게 지냈다고,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서 미치겠다고, 아무 말이나 하면서 짜증을 내면 문을 열어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말에 엔젤이 현관문을 열면서 갑자기 내 멱살을 잡고 끌고 들어가 거실 쪽에 내동댕이쳤다. 엔젤의 깜빡이지 않으려 애 쓰는 두 눈에 눈물이 고인 것이 그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또렷하게 보였다. 





고신 : "너 미쳤어?"


엔젤 : "너 지금 자존심 상해서 이러는 거 아니야? 너보다 못한 내가, 자꾸 뭐라고 널 밀어내니까 괜히 자존심 때문에 오기 생겨서 이러는 거 아니냐고."


고신 : "시발 너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무 찔려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오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엔젤에게 그건 오해가 아닐 거니까. 엔젤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려도 어깨가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그림자로 비춰져 부각되었다. 정물처럼 멍청하게 손을 받치고 뒤로 넘어갈 듯 굳어 있다가 느릿하게 일어나 엔젤의 옷 매무새를 탁탁 털어주었다. 



엔젤이 내 손을 뿌리치고 내가 털어낸 부분을 다시 한 번 제 손으로 털어내었을 때 나는 훌쩍거리며 그 집을 나섰다. 몇 번이나 민원을 넣은 게 먹혀든 건지 가로등 불빛이 엄청 환하게 어두운 골목을 밝히고 있었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걸음이 제 멋대로 엉켰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자빠졌다가 일어나 비틀비틀 걸으며 발작하듯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폐에 물이 차면 마리화나의 연기로 습한 기운을 날려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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