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간 정신을 잃고 있다가 눈을 떴다. 텅 빈 룸 바닥에 나 혼자 누워있는 상태였다. 눈 앞에 깨진 술병의 조각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들이 쏟아져 있는 것이 보였다. 손으로 대충 깨진 유리조각을 치워내고 바닥을 짚어 겨우 소파 위까지 올라가 누웠다.
눈 앞에 있는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문 밖의 소음에 삐이, 하는 이명이 섞여 들렸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송곳으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슴을 짓누르며 숨을 골랐다. 잦은 기침에 눈 앞이 또 뿌옇게 흐려졌다. 손가락으로 눈가를 짓눌러 어린 습기를 훔쳐냈다.
호흡이 자꾸만 밭아지고, 기침이 더 거칠어질 뿐이었다. 이러다 죽겠네. 약을 너무 많이 했나 봐. 컥컥대며 손을 뻗어 테이블 위를 더듬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단추가 풀어진 팔에 푸릇하게 멍자국과 바늘자국이 비춰진다.
미쳤네, 이렇게 뒤지면 답도 없는데.
호흡이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자꾸 히죽이며 웃음이 나왔다. 눈가가 얼얼할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흐릿한 시야로 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실루엣으로만 보이기에 이게 정말 용인지 환각인지 판가름하기 힘들었고, 진짜라고 해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곧 나는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게 엔젤은 아닐까 생각했다. 진짜 말고, 환영.
허공 속에 손을 흔들었다.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손이 엔젤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뭔가의 팔에 닿았다. 아무것도 없는 데 헛것만 보는 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럼 누굴까.
그러자 그 애가 무감각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다가 내 뺨에 손을 댔다. 마치 살아있는 이의 것이 아닌 듯 차가웠다. 다시 손을 휘저어 얼음장같이 차가운 팔을 잡아 밀쳐내려 애를 썼다. 움찔거리며 내가 민 대로 살짝은 밀려난 그 인영은 잠시간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내 입을 뗐다.
"방해하지 않을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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