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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st] 24

10
  • 조회수10
  • 작성일02:05






초췌한 몰골로 학원을 찾았을 때 엔젤이 간이 의자 옆에 있는 자판기 앞에서 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곧 그 곁으로 누군가 나 만큼이나 초췌한 몰골로 엔젤에게 다가가 캔커피로 보이는 캔 음료를 뽑아 건네는 것이 보였다. 엔젤이 아주 잠깐 짧게 그에게 눈을 맞추곤 눈 웃음을 치며 고맙슴니다, 하고 화답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러나 곧 그가 뭔가를 말하려고 머뭇거리자 엔젤은 그럼 열심히 공부하세요, 하고 온화하지만 단호하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버렸다. 무슨 심정이 들었는지 나는 계단을 밟아 올라서다 말고 이내 정색하곤 고개를 돌려 캔 커피를 따는 엔젤을 쳐다봤다. 물 흐르듯 고민도 없는 자연스러운 그 행동에 자신만의 대응 순서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쩜 그렇게 자연스럽게 손 쓸 수 없게 거절을 하나.



마치 나는 계단을 오르는 방법을 까먹은 이처럼 굳어 있다가 느릿하고 어설프게 계단을 올라갔다. 캔을 한 모금 작게 마시던 엔젤의 눈길이 스치듯 내게 닿았다가 떨어져 나갔다. 아주 잠깐 나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듯 스치던 눈길이 천천히 좀 전 궤적을 돌이켜 내게 닿았을 때 나는 억지로 자연스러운 척 엔젤 앞에 섰다. 



주머니에 동전이 있었나. 트레이닝 바지를 뒤지다 카드 살이 인생에 동전 따위가 있을 리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 시발, 이라는 말만 생각지도 못하게 육성으로 튀어나와버려서 괜히 인상을 쓰며 팔백원이나 하냐 하는 둥 없어 보이게 변명을 하게 만들었고, 곧 엔젤이 제 파우치에서 천원짜리를 꺼내 자판기에 넣었지만 엔젤이 넣는 천원짜리 지폐가 잘못 된 건지 자판기가 이상한 건지 넣는 족족 지폐를 뱉어냈다. 덕분에 시간은 벌었다. 





엔젤 : "먹지 말라고 그러나 보다."





엔젤이 웃으며 내 손에 지폐를 쥐어주었다. 그건 좀 전 제게 찝쩍거리던 캔을 뽑아 건네던 남자에게 짓던 미소와 비슷했다. 주눅이 든 얼굴로 지폐를 꾹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까지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이다.





고신 : "밥 먹으러 갈래?"


엔젤 : "밥은 됐고,"





시간이 얼마 없었다. 시험 공고까지 뜬 마당에 조금이라도 책을 더 보고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은 그 학원을 다니면서 직접 준비하는 이들이 아니더라도 알만한 사실이었다.



엔젤이 자꾸 폰을 들여다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괜히 부정적으로 생가하는 게 아니라 내게 더 이상 시간 낭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곧 우리 둘은 학원 근처에 있는 거의 주 고객층이 테이크아웃 손님인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시끄러운 음악 만큼 아르바이트생도, 주문을 하는 이들도 부산스러웠다. 빨리 빨리 음료를 받아 들고 나갈 생각 밖에 없는 이들이 주 고객인 그 카페 안, 그 시끄러운 용들 사이에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주문대와 멀리 떨어져있지도 않아서 굉장히 거슬렸지만 다른 곳으로 옮기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엔젤이 내게 그런 시간을 내어주지 않을 거라는 어떤 확신이 들었던 것도 그 허접한 카페에서 나갈 수 없던 이유 중 하나였다. 



엔젤은 내가 주문한 커피를 마시는 둥 마는 둥 양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테이크아웃잔에 담긴 커피를 들여다봤고, 그러더니 테이크아웃 컵에 준 거 보면 삼십분 안에 나가라는 뜻 같은데, 하고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대충 만든 커피를 대충 인테리어를 한 것 같은 카페에 앉아서 먹고 있으니 대충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다리를 좀 떨자 엔젤이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고신 : "집에서 이거 때려치우고 미국 가래."


엔젤 : "잘 됐네."





정말 1초도 지나지 않아서 내 말을 받아쳤고, 그런 대답 때문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 금방 입을 다물어버렸다. 엔젤의 얼굴에 얼핏 아주 예전에 교무실 앞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어떤 말이라도 하면 엔젤이 나 갖고 놀았다고 생각해도 돼? 하고 물을 것 같았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엔젤을 찾아왔나, 생각하며 앞에 놓은 얇은 플라스틱 컵을 매만지며 초조해했다.





고신 : "내가 너한테 빚이 있는 건 알아."


엔젤 : "빚?"


고신 : "너한테 내가 못 할 짓 했던 거는 미안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


엔젤 : "그래."





잠시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곧 엔젤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는 게 보였다. 길게 그림자를 만들고 창가를 등지고 서서 발을 문 쪽으로 내딛고 얼굴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냥 보기엔 너무 차가운 얼굴이었다.





엔젤 : "그래도 이번엔 먼저 말해줘서 고마워. 잘 가."





그렇게 엔젤이 아주 빠른 속도로 카페를 나가버렸다. 커다란 통유리로 엔젤의 걸어가는 옆모습이 꼭 스크린에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슬프게 보였다.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코 앞에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빨갛게 익은 노을이 천천히 잠기고 있었다. 너무 정면이라 눈이 아려왔다. 눈을 반쯤 감은 채로 가방을 잡아당기자 엔젤이 커피를 바닥에 쏟을 정도로 휘청거리며 돌아섰다.



땅바닥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는 커피를 내려다보며 엔젤이 뭐하는 거야, 낮게 읊조렸다. 커피로 젖어가는 땅바닥 만큼 젖어가는 목소리였다.








고신 : "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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