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VILLAGE

  • 스토어

  • 틱톡

  • 플러스친구

  • 유튜브

  • 인스타그램

소설 게시판

  • 드래곤빌리지
  • 뽐내기 > 소설 게시판

유저 프로필 사진

[Thirst] 26 (마지막 화)

10
  • 조회수20
  • 작성일02:50






첫 모의고사 결과는 엉망이었다. 첫 문제를 풀 때부터 예상했던 암울한 성적에 한숨밖에 나오질 않았다. 오답 노트를 뒤적거리다가 그냥 덮은 채 좌절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체력 학원을 갈 시간은 한 시간 가량 남아있었다. 



모의고사 성적은 어때요?



물어오는 낯익은 얼굴들에 얼른 노트를 덮어 고개를 저었다. 망쳤는데요. 덤덤히 말하면서 나를 달랬다. 어차피 짧은 시간 안에 뭔가 결판이 날 거라고 생각 하지는 않았잖아? 그래도 암울하긴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전 엔젤이 서울시 행정직 필시시험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면접이라면 더 볼 것도 없이 합격일 거라 미리 축하한다는 말을 보낼까 하다가 흔해빠진 축하의 말을 보내며 은근슬쩍 연락 하느 느낌은 주기 싫어서 참았다. 그렇지만 자꾸 문자가 신경이 쓰였다. 그냥 연락 한 번 해볼까 고민은 하지만 쉽사리 마음이 잡히지 않는 일주일이었다. 



그러니 이런 결과는 더더욱 당연한 거지. 집중력이 떨어질 때 마다 이 악물고 책을 들고 팠던 게 우습게도 엔젤의 얼굴이 떠올랐으면서 결국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문자를 보내지 않은 건 잘 한 일인 것 같다. 문자를 보내서 답장이 오지 않았다면 그것대로 신경이 쓰여 공부가 되지 않았을 터였다. 



학원 앞에 있는 독서실로 가는 길, 저녁이라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노상의 테이블 쪽에 용들이 모여 앉아 술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벌써 불쾌해진 얼굴인 이들을 보면서 내가 술을 마시지 않은 지 얼마나 된 건지 새어본 지도 꽤 됐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술에 취해 담배인지 뭔지 모를 연초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있었던 일들이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다. 엄마가 원했던 대로 정제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었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내 상처를 안다며 생각 없이 놀자고 꼬셔서 나를 끌고 간다면 못이긴 척 끌려갈 것이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그리고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엔젤을 생각했다. 



촉박한 듯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부지런히 걸어 열람실 안으로 들어가 오답 노트를 펼쳤다. 풀었던 문제를 또 틀리는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고 싶진 않다. 했던 실수를 반복하는 용이 되긴 싫다. 




아주 여러 번 다짐했다. 더 이상은 망치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이든, 엔젤과의 관계든, 뭐든.










엔젤에게 고백했던 그게 벌써 몇 개월 전이었지. 



운동은 그래도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오랜 시간 방탕한 생활을 지내온 나의 몸은 겉만 멀쩡하고 속은 망가져 버린 듯 생각대로 잘 움직이지 않았다. 특히 팔굽혀펴기를 할 때 더 그랬다. 무리하게 개수를 늘리다 팔에 힘이 풀려 바닥으로 엎어지며 앞니가 부러질 뻔했다. 



우스운 꼴이 될 뻔 했단 생각에 무안해져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괜히 바닥을 꽝꽝 하고 밟아댔다. 이럴 때 좋은 근질이라는 건 다 소용이 없구나.



운동할 때도 맺히지 않았던 땀방울이 성질을 내기 무섭게 이마에 맺히기 시작하고 실내 운동장을 한 바퀴 더 뛰어보자는 원생 동기의 말을 무시하며 가방을 들쳐 맸다. 형법, 형사소송법 등 각종 두껍고 무거운 교재와 문제집이 가득 들어찬 가방이 괜히 더 무겁게 느껴졌다. 



1층으로 내려간 뒤, 나는 조심스럽게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그 앞을 서성거렸다. 딱 한 캔만 마시면 괜찮을 거란 생각과 이걸 마시고 나면 다시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강하게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점점 내 손바닥 안에서 미지근해지는 맥주캔을 만져댈 뿐이었다. 



매일같이 빈티지 샴페인, 비싼 양주로 거나하게 취해버렸던 내가 맥주 한 캔에 절절 맨다는 게 너무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용이 되기로 약속했다. 


내게 검지로 빈총을 쏘는 시늉을 하며 입으로 탕탕 효과음을 내던 엔젤의 손가락을 쳐다보며 나는 진짜 총을 맞은 것처럼 명치 어딘가를 내 손으로 더듬었다. 쇄골부터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가끔 누가 너 총 쏴버렸으면 싶었다고 했잖아, 나한테 총 맞아 죽어서 지금 다시 태어났다고 쳐. 그럼 되는 거 아니야?





엔젤은 그렇게 말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엔젤이 눈물 나게 보고 싶었다. 맥주를 마시고 싶었던 건 핑계인 것 같다. 취한 척 그 반지층 집에 찾아가 문을 걷어차고 엔젤의 집에 몸을 뉘이고 싶다. 



결국 나는 완전히 뜨뜻 미지근해진 맥주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가방을 들쳐 맨 채 길을 내딛었다. 대로변으로 나서자마자 나는 약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손바닥을 펼쳐봤다. 



그 날 학원 앞에서 엔젤을 마주쳤던 건 우연이었을까. 그 날 술에 취해, 진짜 대마초일지도 모를 연초에 취해 피를 흘리며,지금의 나와 같이 평범한 용들 속에 섞여 튀게도 비틀대며 걷던 내게 갑자기 나타난 그 날의 엔젤의 얼굴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좀 전에 다친 것처럼 손바닥이 아려와 희미하게 흉만 남은 손바닥을 눈 앞에 당겼다. 





난 쓰레기 같은 거 안주워 가.





이렇게 하고 나니 생각이 나네. 이상하게 웃음이 나면서 내 어깨를 묵직하게 짓누르던 가방의 무게가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 쓰레기는 주워가면 안 되지, 안 돼. 읊조리며 흉터를 매만진다. 



발에 힘을 주고 똑바로 걸음을 내딛는다. 공부에 업무에 하루 일과에 지친 용들을 유혹하는 불빛듯 아래로 지극히 평범한 공시생 하나가 그 대열에 끼어들어 걷는다.










.



다음작들 몇개 스토리 라인 정리하느라 좀 늦었네용...ㅎㅎ

아직 공개 못한 쌓여있는 이야기들이 많으니 천천히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0

    • 상호 : (주)하이브로
    • 주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영동대로 432 준앤빌딩 4층 (135-280)
    • 대표 : 원세연
    • 사업자번호 : 120-87-89784
    • 통신판매업신고 : 강남-03212호
    • Email : support@highbrow.com

    Copyright © highbrow,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