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신의 작업실은 그 말도 안되는 가격에 팔려나가는 그림들이 전시된 서울옥션 스페이스에서 그다지 머지않은 곳에 있었다. 원래는 작업실 같은 건 따로 두지 않았는데 졸업 직전 거물급 에이전시랑 계약하더니 작품전 하면서 고신의 입지는 망원둥 지하 단칸방에서 평창동 40평 짜리 작업실로 순식간에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렇게 업그레이드 옵션에 고신의 몸값은 계속해서 뛰고 있다.
잔잔바리로 서운해하던 엔젤이 대놓고 성질을 내기 시작한 시점이 거기 부터였다. 망원동 지하 단칸방 줄 하나 쳐 놓고 작업실과 물감이 튄 시트를 덮은 침대를 넘나드는 고신이 안쓰러워 조그마한 작업실 하나 구해줄 생각을 하고 있던 게 딱 그 때.
엄마 살살 꿰어내면 남는 학원 상가 구석에 공실 하나는 빼줄 것 같았고 실제로도 엔젤의 엄마는 엄마의 표현대로 개차반같은 친구들 보다 엔젤이 명문대 미대 다니는 고신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구실만 잘 찾으면 정말 해줄 것 같기도 했다.
근데 갑자기 고신이 평창동으로 작없업실을 옮긴다고 했다. 엔젤의 귀에 고신의 입에서 먼저 나온 그 작업실이라는 단어가 무슨 못 들을 단어처럼 들렸다. 이상했다. 그냥 그 말하고선 이젤 앞에 앉아 엔젤을 등진 채 붓을 놀리는 고신이 엔젤이 알던 고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 가뜩이나 정신승리 하며 버티던 엔젤 최초의 을의 연애에 꽝 하고 쐐기를 박는 것 같았다.
정작 화를 내야 될 이는 고신이었는데. 가끔 엔젤은 자신이 좀 이기적인 건가 생각했다. 어플 위치추적 때문에 헌팅포차 가서 걸린 게 몇 번이더라. 클럽 가서 논다고 전화 몇 번 씹었더라. 할리우드가 아닌 이상에야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고신이 그나마도 좋게 넘어가주는 걸 고맙다고 여겨도 모자랄 판이긴 한데.
엔젤은 매번 마치 반대의 상황에 놓인 이처럼 뻔뻔하게 성질을 냈다. 어쩌면 고신이 터지지 않아서 엔젤은 더 빡치나 고민했다. 엔젤이었다면 고신이 헌팅포차에서 노는 그 날로 빡쳐서 난리 쳤을 거 같은데. 울며불며 난리쳐도 모자랄 상황에 고신은 그냥 그러려니 하며 용서하고 넘어가고, 가끔 어쩌다 약간 화라도 내면
네가 맨날 그림 그린다고 나 혼자 두니까 내가 당연히 이러고 노는 거 아니야?
했었지.
고신이 허둥지둥 엔젤이 있는 곳에 쫓아와서 취한 엔젤을 끌고 갈 때마다 엔젤은 괜히 악다구니를 썼다. 야, 니 그림 내가 다 사서 다 태워버릴 거야. 그러다 기어이 고신의 입에서 생각할 시간을 갖자는 소리가 나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먼저 했다는 이유로 엔젤은 철저히 고신을 죄인 취급했다.
그렇게 또 먼저 미안하게 만들고 나서 얘기 좀 하자는 말에 쪼르르 달려나가는 게 혼자 생각해도 좀 웃긴 일이긴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