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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use] 12

11
  • 조회수353
  • 작성일2026.03.06






좀 엉뚱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렇지만 너무 사랑스럽고 솔직하지만 밉지 않은, 엔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갸웃거리긴 했지만 끝도 없이 무언가를 쏟아내는 동안에도 똑바로 고신을 주시하고 있는 눈빛이 신기할 정도로 뚜렷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다들 그렇게 스며들었나보지.



고신이 초반 며칠 좀 버텼던 건 엔젤에게 쉽게 넘어가버린 다른 용들과 같은 인상을 주기 싫어서였다. 처음에 엔젤과 연락이 끊어졌을 때도 그렇게 버텼다. 겨우 일주일이었는데 엔젤을 떠올리면 붓을 드는 것조차도 힘겨웠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캔버스에 연필을 가져다대곤 형체도 알 수 없는 초상화를 그렸다가 그게 엔젤이라느 것을 깨닫고 고신은 당혹스러웠다. 어? 나 이런 그림 안 그리는데. 고신은 핑계고 뭐고 못 참고 그냥 엔젤에게 연락을 했다. 도저히 만나자는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예쁘고 모델 같은 애. 길을 다니면 수도 없이 전화번호를 따이는 애. 그냥 가만히 하는 행동인데 끼 부리는 것처럼 보여서 보는 이 마음 이상하게 만드는 애. 학습된 미술만 알았던 고신의 인생에 끼어들어 배우지 않은 걸 막 그리게 아이디어를 주는 애. 그런 애를 뮤즈라고 하던데. 



고신은 1학년 때 거기에 대해 짧게 배운 적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의 여신. 고신은 엔젤의 얼굴만 생각해도 마음이 저릿했다. 엔젤을 생각하면 자꾸 이젤 앞에 앉고 싶고 뭔가를 막 그려내고 싶었다.



막 고신의 그림을 다른 이들이 알아주기 시작한 시점이 엔젤을 만나고 부터였다. 에어전시 사장을 만나서 작품전 열고, 평론가들한테 호평 받고 그림 비싸게 팔아치우고. 그렇게 고신의 예술엔 정말 엔젤이 필요했다. 



고신이 찔린 건 엔젤이 만났다고 했던 예술병 걸렸던 애들과 자신이 다를 게 없어서, 허락도 없이 뮤즈삼고 엔젤 막 건드는 그 감성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비싸게 팔고 그 바닥에서 점점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랑하는 것도 맞고 이용하는 것도 맞고. 고신은 자신이 예술 쓰레기가 되어가는 건가 싶었다. 








고신은 의식 없이 붓을 막 캔버스에 갖다 댔다. 그렇게 멍하게 그림을 이젤 앞에 앉아서 의식 없이 붓을 푹 찌르고 있다가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통 창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쨍한 햇빛이 막 쏟아졌다. 느릿하게 눈살 찌푸리고선 아, 블라인드. 하고 일어나서 창 쪽으로 걸어가다가 우당탕 이젤을 또 넘어뜨렸다. 



바닥에 자빠진 캔버스를 멍하게 쳐다봤다. 물감이 덕지덕지 붙은 그림. 어떤 체계도 기법도 없는 낙서 같은 그림이다. 아직 이런 그림 내놓는다고 비싼 값에 팔고 좋은 평가 들을 만큼 네임드인 것도 아닌데 큰일났다. 



아니 지금 그림이 문제가 아니라, 엔젤이 헤어지자고 했는데. 그게 문제지. 그렇게 진지하게 차분하게 평소 하던 것처럼 성질내지 않고서. 그래서 더 문제다. 엔젤은 매번 고신의 속을 긁긴 했지만 그렇게 진지하게 이별을 얘기한 적은 없다. 그래서 마음이 잠잠해지고 못 버틸 것 같을 때 쯤 먼저 이야기를 하자고 슬그머니 연락을 할 수 있는 쪽이 자신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또 멍하게 앉아있다가 또 갑자기 깨어난 용처럼 아, 하며 뻣뻣한 몸짓으로 이젤을 세우고 다리를 조였다. 블라인드를 내리자 쨍한 햇빛은 좀 잠잠해졌고 작업실 안의 조도는 더 낮아졌다. 조명을 올리고 스툴에 앉아 있다가 고신이 또 얼빠진 용처럼 있다가 아, 하고 그림을 집어 들었다. 



지금 아트페어 수정할 그림이 문제가 아니라는 거잖아. 이건 도저히 그림을 그릴 상황이 아니다. 캔버스 집어 들었다가 다시 확 뿌리쳤다. 맘 같아선 그림을 다 찢어버리고 싶고 물감 집어 던지면서 성질내고 싶다. 근데 현실은 빨래 다 됐다는 알림에 자리에서 느릿하게 일어날 뿐이다. 








아, 엔젤 옷. 저번에 비올 때 세탁한다고 받아놓고 아직 못 돌려줬는데. 옷 줘야 되는데. 세타긱에서 빨래 꺼내고 건조기에 넣으면서 생각했다. 근데 그것도 너무 속이 훤히 보이는 핑계다. 그렇게 성질 안내고 지쳐버린 얼굴로 나선 건 처음이라 사실 엄두도 나질 않는다. 



옷을 막 대충 건조기 안에 쑤셔 넣으며 멍하게 있다가 잡힌 엔젤의 옷을 보는데 급작스럽게 제게 안겨서 울던 엔젤의 얼굴이 떠올랐다. 별안간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는 기분과 천천히 우울해지는 감성. 어쩌면 그 연장선일 눈물이 방울방울 맺히는 걸 닦아주었었다. 



왜 울어. 지금 혼날 짓 하다 걸린 게 누군데. 속삭이는데 간지럽다고 젖은 눈으로 다시 막 어린애처럼 웃다가 고신을 끌어안았다. 고신은 더 간지러웠다. 고신의 얼굴을 양 손으로 꽉 쥔 엔젤이 딱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울었다. 



너, 너 진짜 나 사랑해? 



거기에 뭐라고 대답했더라.



엔젤은 재차 반복된 질문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사랑한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사랑해. 사랑하지. 진짜 사랑해. 근데 우리 왜 갑자기 이렇게 헤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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