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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Muse] 18 (마지막 화)

11
  • 조회수16
  • 작성일01:34






눈 뜨기 싫어라. 엔젤은 잠이 깼으면서도 눈에 접착제 들어간 용마냥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엎드리고 자서 온 몸은 쑤셨고, 속도 매스꺼웠는데 눈을 뜨고 사태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얼마나 더 버티고 있었을까. 옆에서 꼼지락대는 느낌에 살짝 실눈을 떴다. 



침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느라, 고신은 간당간당하게 침대 끝에 버틴다고 해도 무방할 자세로 옆으로 누워있었다. 툭 건들면 정말 바닥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이 하고는 그 불편한 자세로 기어이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엔젤은 슬금슬금 몸을 뒤집어봤다. 척추가 곧게 펴지는 느낌이 들면서 머리와 어깨가 묵직하고 뻐근했다. 팔목까지 시큰거리는 게 기억이 거의 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길에서 질질 끌려다닌 게 분명했다. 



엔젤은 소리 없이 이불을 걷어내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고신이 일어나기 전에 나가버릴까, 잠깐 고민하다가 조용히 발을 바닥에 내려놨다.



익숙함이 무섭긴 무섭다. 헤어진 주제에 이곳, 엔젤이 제일 못마땅해했던 평창동의 작업실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잠이 들어 버렸다. 마지막 기억이라 해봤자 차에서 잠깐 고신의 얼굴을 봤던 것과 토를 했던 기억 잠깐, 그 이후엔 모르겠다. 불행 중 다행이게도 엔젤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잊고 고신에게 달려들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엔젤은 발걸음 소리를 죽인 채 주변을 둘러봤다. 별로 달라진 거 없는 작업실, 변한 거라곤 헤어졌다는 사실 뿐이고 모든 게 다 그대로다. 



엔젤은 괜히 테이블 위나 소파 같은 곳을 쳐다봤다. 혹시라도, 또 뭘 흘려놓고 가서 괜히 만날 구실을 만들어 전전긍긍하고 싶진 않다. 헤어져 있는 시간 동안 여기 놓고 간 물건들 돌려달라는 핑계로 폰을 수십 번 들었다 놨다. 아, 근데 폰이 어딨더라. 엔젤이 테이블 가까이로 더 다가가 살폈다. 지갑이나 폰은 어디다 두고 온 거지. 그게 있어야 뭐 택시라도 타고 나가는데,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기억이 나질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괜히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 같은 걸 들어 봤지만 거기 있을 리 있나. 아무리 취해도 폰이나 지갑 같은 건 잘 챙겼는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자괴감이 밀려든다.



악, 엔젤은 머리를 감싸 쥐고 소파에 푹 주저앉았다. 설마 고신의 차에 있을까. 아르테미스가 챙겼나 잠깐 생각하다 차키라도 몰래 들고 나갈 생각에 다시 그 서류 종이 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뭔 놈의 서류가 이렇게 많아. 그림쟁이가 그림만 잘 그리면 되지. 뭐 건물이라도 올리려고 그러는 거야? 뭔 계약을 한 거야? 



그 와중에 호기심이 들어서 아무렇게나 팽개친 종이를 슬쩍 집어 들어 읽어봤다. 계약 해지 합의서...? 계약 해지? 중간에 다른 소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냥 계약 해지 합의서라는 단어만 눈에 확 띈다. 제일 마지막에 법인 도장이 찍혀 있고 대표자 란에 그 늙은 여우의 이름이 있는 걸 보면 고신이 에이전시와 진짜 계약을 해지 하겠단 소린가보다. 



엔젤이 놀라서 육성으로 헐, 소리를 내며 입을 떼버렸다. 때문에 아슬아슬한 자세로 누워있던 고신이 대리석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고신 : "악, 내 무릎."





고신이 거의 울듯이 얼굴 구기며 무릎을 감싸 안고 있다가 엔젤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 지금 이럴 상황 아닌 거 아는데. 엔젤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팔랑 팔랑 서류 종이를 막 흔들었다. 





엔젤 : "너.. 에이전시랑 계약 해지해?"


고신 : "몰라? 그렇게 된 건가? 거기에 그러라고 되어 있어?"


엔젤 : "귀사와의 계약 내용을 위반하진 않았으나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았으며.... 아... 뭐야.... 무튼 그렇게 된 거 같은데. 너 뭐 잘못 했어?"


고신 : ".....아, 인터뷰 안하고 도망쳤다고 열 받았나 본데."


엔젤 : "너네 회사는 그림쟁이한테 별 거 다 시키네. 인터뷰는 왜 안 해서 해지 당하는 건데."


고신 : "너한테 간다고."





순간 정적이 흐른다. 고신은 정말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말했는데 엔젤은 꽤 당혹스러웠다. 그러니까 나를 왜.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냥 그 종이를 탁 테이블 위에 흩어 놨다. 



아, 몰라 몰라. 괜히 나 데리고 와서 에이전시 짤린다고 핑계 대지 마. 엔젤은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뚝딱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고개를 돌리려는데 거짓말처럼 또 창가에 있는 작업 구역 이젤에 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또 뭐야, 저건... 여태 고신이 그린 난해했던 그림과 딱 봐도 다른 그림. 다른 건 해석하지 못해도, 그 그림이 뜻하는 건 뭔지 단박에 알아챘다. 마치 말하기 좋은 타이밍을 놓친 용처럼 탄식하던 고신이 무릎을 문지르며 엔젤에게 다가온다. 그리고는 머쓱한 얼굴로 이젤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고신 : "오랜만에... 너 그렸어. 가까이서 볼래?"





진짜 고신 유치한 건 알아줘야 돼. 엔젤은 그 커다란 캔버스 안에서 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웬 여자 그림을 응시했다. 이럴 때 시력이 좋은 건 좀 별로인 거 같다. 엔젤이 버티고 있자 고신이 팔을 잡아 끌었다. 가까이서 봐 줘. 한 1초 버티다 엔젤이 못 이긴 척 끌려가서 그림에 가까이 다가섰다.



달 옆에 북극성, 카시오페아, 맞네. 첫 데이트 하고 돌아오던 날, 엔젤은 초딩 때도 안했던 별자리를 검색했다. 아니 이달의 별자리 운세 말고.. 그렇게 찾은 카시오페아 자리가 뭔지. 북극성이 어디 박힌 건지 검색하면서 다시 별을 보자고 하면 먼저 가리킬 거라고 생각했었다. 



서울의 밤은 너무 흐려서 카시오페아를 볼 기회가 많이 없었지만 진짜 멍청이가 아닌 이상 그렇게 보지 못한다고 해서 그 순간의 감정까진 잊을 순 없을 것이다. 





엔젤 : "그림 너무 유치한데..."



말은 그렇게 해놓고 엔젤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였다. 그 순간이 소중한 건 자신뿐인 줄 알았다. 별을 보자고 한 건 좀 방탕하게 살아왔던 엔젤의 인생에서 좀 신박한 수작이었다. 그렇게 흐린 하늘을 보면서 뭔 별이야. 엔젤은 그렇게 하고 잡은 손이 부끄러운지 얼른 풀어 버리고 밤 하늘 콕콕 가리키는 고신을 보며 설마 이게 사랑인가, 싶었다. 



그 순간이 말도 안 되게 소중해서 오래오래 곱씹었는데. 그게 혼자 그런 거라고 생각하니까 웃기게도 어쩌다 가끔 맑은 밤하늘에 콕 박혀 있는 북극성을 발견하게 될 때면 괜히 서운해져서 고신에게 난리쳤다. 



그냥 물어나 볼 걸 그랬나, 너 기억 하냐고.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소중한 시간은 참 많았는데, 표현 못하는 고신에게도 그런 순간이 다 존재했을 거란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엔젤은 괜히 눈물 고인 채로 빈정대며 코웃음을 쳤다. 이미 마음은 다 노곤노곤 녹아내린지 한참 됐다. 다 풀어져서는 표정관리 못하는 얼굴에 눈썹만 씰룩거리며 그림에 어설프게 삿대질 했다. 앙칼지게 성질내고 싶지만 이미 마음이 다 풀려서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엔젤 : "무슨 중학교 사생대회에서 그린 수준이다. 참나. 왜 저걸 그려서."


고신 : "저거 작품명 뭔지 알아?"


엔젤 : "몰라.. 내가 알 게 뭐야..... 치... 헤어진 사이에."


고신 : "마이 스윗 뮤즈."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랜만에 고신이 박력 넘치게 엔젤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박력 넘치게 안아놓고 고신은 코를 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어깨에 가만히 얼굴 묻은 엔젤이 너가 더 감동 받고 난리야, 하고 되물었지만 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솔직히 감동 받았다기보다는 뭐 좀 쪽팔리는 것 같기도 했다. 워낙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견디기 힘들어 하니까. 그러게 마이 스윗 뮤즈가 뭐야. 그림 보러 오던 용도 외면하겠다, 야.



그래놓고 엔젤은 픽 픽 웃음 나오는 거 간신히 참았다. 근데 웃음 날 것 같은데 눈물이 고이는 건 또 뭐야. 진짜 신체 기관도 지랄 맞다. 엔젤은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이의 얼굴인 거 들킬 까봐 괜히 어깨 꼭 붙잡았다. 





엔젤 : "작품명 뭐라고? 마이.. 스윗 뮤즈?"


고신 : "응."


엔젤 : "바꿔. 좀 찔려. 나의 지랄 맞은 뮤즈라고, 바꿔."





좀 전까지 약간 훌쩍거리더니 고신이 풉하고 터졌다. 그렇게 웃다 찡하다 하는 와중에 두 용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다시는 헤어지는 건 하지 않겠다고. 고신이 잠자코 먼저 말했다. 엔젤, 에이전시 차리면 나랑 계약 할 거지? 계약 조항 성실히 이행할게. 



엔젤은 괜히 등을 팡팡 쳤다. 이 바닥에서 매장 시킬 기회 주는 거야? 응.. 엔젤, 사랑해. 치. 아, 너.. 아르테미스가 너 말 전해준다던데. 아...... 됐어, 내가 방금 말했어. 








참 지랄 맞은 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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