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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5

11
  • 조회수22
  • 작성일2026.03.15






그 노래가 가스펠송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댓글 때문이었다. 모두가 짜 맞춘 듯 비슷한 댓글을 달았었다. 축하해. 무럽다. 꽃, 반지 예쁘다 등등. 엔젤은 그 댓글들에 일일이 답장을 달아놓다가 고등학교 동창이 달아놓은 가스펠송 아니냐? 라는 댓글 때문에 그 카페에 희미하게 흐르던 배경음악을 제대로 듣게 되었다. 몇 번을 들어도 그게 팝송인지 가요인지 가스펠송인지 알 수는 없었다. 



5초 안에 지나가는 그 멜로디가 묘하게 귀에 익어버린 건 단순한 호기심 탓이었다. 그에 차에서 같이 영상을 보던 시타엘은 그냥 들어서는 팝송인지 찬송가인지 모르겠다며 신기해했다. 요즘은 찬송가도 진짜 그냥 팝송처럼 나오는 구나? 시타엘의 말에 엔젤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 말을 그대로 그 고등학교 동창의 댓글에 달았다. 그 뿐이었다. 그게 무슨 노래인진 정말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고신은 10년 전 어느 날처럼 호프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동기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였다. 시타엘의 걱정스러운 눈길에는 그냥 잠깐 속이 안 좋았다네, 하며 대신 답변을 하면서 안주로 나온 마른 오징어를 입에 무는 걸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엔젤이 시타엘의 옆, 고신의 기준으로는 대각선 앞에 앉으며 쳐다봤다. 그 때처럼 누군가의 흑장미를 차지하며 소주를 콸콸 쏟아 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자꾸만 목이 탔다.



엔젤이 맥주를 쥐자 시타엘이 그것을 부드럽게 말렸다. 멍하게 잔을 내려다보는데 괜히 코끝이 시려왔다. 이상하게, 자꾸 예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고신을 보고 있으면 10년 전 어리숙하게 사랑에 빠진 바보 같은 엔젤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묻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엔젤은 멍청하게 서서 고신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가 다물기를 두어 번인가 반복했다. 너 교회 다녀? 아니. 그럼 가스펠송 같은 게 취향이야? 아니. 왜? 그러고 나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뱉지 못했다. 너, 내 프로포즈 영상 봤어? 너 SNS 계정 같은 거 없지 않아? 그냥 명쾌하게 물으면 될 걸. 10년 전처럼 묻지 못했다. 



고신이 옆에 앉은 파워가 뭐라 하는 말에 야유하며 킥킥댔다. 장난스럽게 오징어를 던지는 시늉을 하는 왼쪽 손목에는 이제 번쩍이는 롤렉스가 감겨있다. 








술자리는 2차까지 이어져 호프집 바로 옆에 있는 조개구이 집으로 옮겨졌다. 고신 때문이라도 엔젤은 도중에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방법이 없는 걸 알고 있었다. 어쨌든 이 자리는 엔젤과 시타엘의 결혼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기에 이미 한 세트나 다름없이 대하는 사람들을 시타엘에게 감당하라고 두고 혼자만 빠져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신은 오랜만에 마주한 동기들과의 모임이 즐거운 건지 잔뜩 들뜬 모습이었다. 엔젤이 의식적으로 멀리 떨어져 앉았건만 고신의 목소리가 바로 옆인 듯 크게 들려왔다. 



3, 4년의 공백이 다들 큰 건지 이야기의 내용은 고신 중심으로 흐르는 듯 했다. 마치 기자간담회를 하듯 오랜만에 등장한 고신을 향해 저마다 질문을 쏟아냈다. 테이블 끝 반대편에 앉은 엔젤이 자연스럽게 그 질문과 답변에 집중했다. 이상하게도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는 기분이다. 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엔젤은 천천히 소주잔을 들이키며 고신을 슬쩍 쳐다봤다.





시타엘 : "근데 형. 형은 정말 사귀거나 썸 탔던 용도 없어?"


고신 : "그래. 없었다. 왜."


시타엘 : "거짓말하고 있네. 진짜?"


고신 : "없었다니까?"


시타엘 : "그래서 그렇게 해외로 나돈 거야? 외국 애들 만나려고?"





그 말에 웃겨 죽겠다는 듯이 환하게 웃던 고신의 눈과 엔젤의 눈이 마주쳤다. 엔젤이 뭔가에 놀란 듯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고신이 탁, 하고 철판 테이블을 내리쳤다. 탕, 하고 울리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다시 눈길이 고신에게 닿았다. 





고신 : "야. 야."





조금 취기가 오른 탓인지 아니면 기분이 들떠서인지 고신의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조금 높아져있었다. 고신의 목소리에 각자 뭐라 이야기를 하던 동기들이 죄다 고신의 얼굴에 집중을 했다. 헤벌쭉 웃는 고신이 갑자기 시타엘에게 검지 손가락으로 재민을 가리키며 삿대질을 했다. 그에 엔젤은 확실히 고신이 취했다고 생각했다. 엔젤이 알기론 고신은 술에 관련해서는 실수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



걱정이 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나설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누구라도 고신을 말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모두들 취해서 그럴 정신도 없어 보였다. 엔젤은 한숨을 쉬며 그런 고신을 걱정스레 쳐다봤다. 잠시 고신솨 다시 시선이 맞닿았다. 눈길이 묘했다. 그러나 곧바로 그 시선은 다시 시타엘을 향했다. 





고신 : "시타엘, 너 이 자식."





특유의 탁성이 섞인 음성은 좀 전보다 더 커져있었다. 시타엘이 내가 뭐? 하고 고신처럼 웃으면서 어꺠를 들썩 거렸다.





고신 : "너 이 자식, 너 운 좋은 줄 알아. 나 원래 한국 안오려고 했어. 몇 년간은."


시타엘 : "그래. 알지. 고마워, 형. 한국에 와 줘서. 아, 우리 결혼식에도 와주면 진짜 고맙고 축의금 많이 해주면 진짜 더더더 고맙고."





그 말에 다른 동기들이 고신의 행동을 따라하듯이 시타엘에게 삿대질을 하며 웃었다. 그 와중에 웃지 못하는 것은 엔젤 한명 뿐인 것 같았다. 고신은 갑자기 무슨 생각인지, 뭔가 생각이 난 듯이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아, 축의금. 하고 읊조리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리고는 제 손목에 감겨 있는 롤렉스시계를 풀고는 그것을 쥐고 한 손으로 테이블을 지탱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쾅 하고 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정말 취해서인지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는 듯 천천히 비틀거리며 테이블을 돌아 나와 시타엘의 앞에 섰다. 



엔젤은 조금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행동을 하려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그렇게 웃는 얼굴이 너무나 잔인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 웃음의 성격이 막연하게 예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웃음은 짝사랑의 상대가 속없이 지어보였을 때 비수가 되는 것이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천진한 웃음은 상처만 된다. 그렇게 예쁘게 웃을 거면 좋아하게 만들지를 말든가 아님 아예 내 앞에서 웃지를 말든가. 엔젤은 자주 그렇게 생각했다. 왜 아직도 그것이 잔인하게만 보이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엔젤은 내리지 못했다. 



묘하게 골이 난 얼굴이 되자 그 표정을 읽은 고신이 천천히 엔젤에게 손을 뻗었다. 그 손가락이 그렇게 엔젤의 미간을 쓸어내렸다. 엔젤의 심장이 비현실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꼭 그 때처럼.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방금 마친 마라토너의 심장처럼.





고신 : "야. 엔젤. 표정 풀어."





그 말을 하는 목소리가 묘하게 낮았고 두 눈은 흰자위가 취기로 인한 탓인지 약간의 붉은 기가 돌았다. 엔젤에게 그렇게 닿았던 시선이 시타엘에게 옮겨갈 때 고신이 다시 입가를 올렸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취하지 않은 엔젤만 뭔가 알 것 같았다. 자신에게서 시타엘에게로 옮겨 가던 그 짧은 순간 고신의 얼굴이 너무나 부자연스러웠다는 것. 



엔젤이 시타엘의 눈앞에서 롤렉스 시계를 놓아버리자 탕탕, 하며 소리를 내며 그것이 시타엘의 바로 코앞으로 떨어졌다. 시타엘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웃으며 뭐하는 거야? 물었을 때 찰나지만 그런 시타엘을 쳐다보는 고신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도 엔젤은 보았다.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 분명 과거의 고신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고신 : "너 나한테 한 대만 맞으면 이거 축의금으로 줄게."





막 새벽장에서 깨어난 듯 잔뜩 갈라진 음성이었다. 그러면서 고신이 시타엘의 앞에 있는 롤렉스 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시타엘 : "뭐라고? 형 돌았어?"





뒤로 넘어갈 듯 시타엘이 웃었다. 시타엘뿐만 아니라 고신다운 허세라며 농담이 지나치다는 듯이 다들 웃고 있을 때 고신의 눈이 번쩍였다. 입가에 작게 경련이 일어난 것을 엔젤이 놓치지 않고 봤다. 직감적으로 고신에게 이 상황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는 것이 엔젤에게만 어렴풋이 느껴졌다. 엔젤은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고신의 이름을 부르려 했을 때 고신이 먼저 시타엘의 이름을 불렀다. 시타엘.





고신 : "진짜 줄게. 한 대 맞을 거냐?"





취한 애들이 보기엔 고신이 그냥 예전처럼 마냥 장난을 치는 것 같아 보이겠지만 고신을 오래 지켜봤던 엔젤의 눈에는 고신이 뭔가 달라보였다. 공기가 다르다. 고신을 감싸고 도는 공기에 뭔지 모를 냉랭함이 묻어난다. 



엔젤이 나서서 먼저 그 시계를 잡으려 할 때 시타엘이 장난스럽게 아싸, 하며 고신의 시계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고신의 주먹이 시타엘의 턱에 내리 꽂혔다. 우당탕하고 뒤로 나자빠진 시타엘이 아프다기보다는 놀란 눈으로 고신의 주먹에 맞은 턱을 감싸 쥐고 쳐다봤다.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싸해지며 술기운이 모조리 달아난 듯 모두가 굳은 얼굴로 고신과 쓰러진 시타엘을 번갈아 쳐다봤다. 엔젤은 고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살폈다. 흰자위에 있던 붉은 기가 짙어지는 것과 미간이 구겨지는 것과 입가가 떨리는 것을.





엔젤 : "고신, 이건.. 장난이 지나치잖아."





말하는 목소리가 의도치 않게 떨렸다. 어쨌든 그 말 때문에 얼떨떨하게 일어나 턱을 쓰다듬으며 앉는 시타엘에게 닿아있던 고신의 눈동자가 엔젤에게 닿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말 그대로 고신은 엔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래서 엔젤은 한 번도 고신이 그렇게 자신을 봐준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내야 했다. 



그리고 또 하나, 고신이 언젠가 한 번이라도 자신을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는 것도 기억해냈다.



초점이 조금 어긋난 듯 가늘어지던 눈을 다시 또렷하게 뜨던 고신이 약간은 비틀대며 일어나 엔젤의 옆으로 와서 섰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롤렉스 시계를 주워들었다. 유난히 번쩍 거리는, 얼마인지 값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 그 시계를 꾹 쥔 고신이 그걸 아무 말 없이 엔젤의 팔에 끼워 넣었다. 





고신 : "선물. 됐지? 나 약속 지켰다?"





고신은 그렇게 롤렉스 시계를 놓고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조개구이가게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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