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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투u 02

3 익명의독자
  • 조회수18
  • 작성일01:09











모두가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사랑이 사라진다고 해서 세계가 쉽사리 멸망하진 않았다. 사랑 빠진 헛헛함에 그저 조금 방황했을 뿐이지. 감정이 쪼그라든 용들이 저지른 무차별 폭행과 방화 때문에 거리는 사시사철 뿌옇고 초췌했다. 경찰은 무능력했고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직업은 언제나 의사와 변호사 같은 사짜들 뿐이었다. 


창밖 풍경은 무표정으로 길을 걷거나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용들이 전부였다. 





그러나 여전히 동물은 번식하고 숲은 울창해지고 계절 따라 눈이 내리고 꽃이 핀다. 사랑의 질병화는 지구의 멸망이 목적이 아니라 마치 이번 세기 인류를 솎아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왜?



그 이유를 알아내어 더 이상의 혼란을 어떻게든 막아보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바로 '크럭스(CRUX)'였다. 이름만 거창할 뿐이지 재난안전대책본부 겸 연구소로서, 역학 조사를 통해 사랑을 해봤음이 밝혀졌음에도 감염되지 않은 자들을 집중적으로 케어하며 백신 개발에 힘쓰는 정부 산하기관이었다. 


크럭스는 집중관리군의 일거수일투족을 캐내는 대신 작은 원룸과 보조금을 지원해주었다. 연구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면 찾아온 조사관을 발로 까면 그만이지만 내겐 전혀 손해 볼 거 없는 장사였기에 기꺼이 피닉스를 맞이한 것이다. 





크럭스가 파견한 역학 조사관 피닉스는 그곳이 제 고향이랬다. 유전자 배합으로 태어났다는 의미였다. 나같은 인간들을 집중 관리하기 위해 사랑 없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애들. 그렇다면 피닉스 너는 엄마가 없겠네? 따위의 예의 밥말아처먹은 질문이 무의식에 튀어나오려던 걸 도로 꿀꺽 삼켰다. 



닭장처럼 이어진 좁은 단지를 돌며 기록을 끝낸 피닉스가 현관문 앞 복도에 기대어 팔짱을 꼈다. 



"엄마가 누군지 몰라요, 아마도 없겠죠."



켁. 



주식이 눈칫밥인 건지 피닉스는 구태여 속으로 삼킨 내 물음까지 자꾸만 낚아챘다. 내 딴엔 숨긴다고 숨긴 건데 알고 보니 표정에서부터 전부 티가 났다는 사실을 피닉스가 알려주었다. 피닉스의 눈치가 타고나게 빠른 편이 아니라 내가 가진 패를 바보처럼 헤벌레 까고 있었다는 거다. 





"어쨌든, 그래도 좋겠다. 넌 목적이라도 가지고 태어나서."



나는 태어난 목적도 이유도 없어. 눈 떠보니 이 세상에 버려진 기분이야. 태생이 방랑자라 육체는 자꾸만 이곳저곳을 떠도는데 도착지가 없어. 뭐가 맞고 틀린 지 알려주는 용도 없어서 무대뽀로 살았어. 


사는 이유도 모르고 사느라 대학도 졸업 가능한 학점에 대충 맞췄고 알바도 하다가 지루하면 바로 때려치웠어. 태생이 똥개라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 시켜줄 주인이 가장 필요한데 나한텐 그게 없었다는 거야. 그래서 로맨스 소설도 멋대로 읽었고 그래서 사랑도 해보고 싶었어. 다들 위험하다고 떠들어대는데 난 그 위험의 기준점을 배운 적이 없어서 몰랐으니까.



"그럼 앞으로 사랑 같은 거 안 했으면 좋겠어요."


"왜?"


"파이어씨가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아직 없으니까. 그게 바로 위험하다는 거예요."


"뭐야, 니가 내 주인이라도 돼?"


"내가 여기 담당이니까, 비슷하죠."


"그래 그럼 앞으로 사랑 안 할게."


"의외로 단순하네요."


"멍청해서 그래. 똥개잖아."



진짜야, 똥개는 원래 그래. 그러니까. 그냥 네 말 들을게 피차 서로 속 터질 일 없게. 너는 내 담당이니까. 





이때부터였을까, 바텐더와 마주 보며 칵테일 기울이다가도 피닉스가 부르면 똥꼬 빠져라 달려가는 삶의 시작이.



피 뽑아야 하니까 취하면 안 돼요. 건강검진 해야 하니까 늦게 자면 안 돼요. 위험하니까 너무 멀리 돌아다니면 안 돼요. 


피닉스는 뭐든 안된다고만 했다. 유독 나에게만 깐깐했다.



거진 날 방안에만 가둬두려고 드네. 크럭스 출신 피닉스야 너는 평생을 바른 생활로 살아와서 규칙적으로 밥 먹고 잠자는 그 삶이 내겐 얼마나 힘든지 절대 모르겠지. 



그치만 태어나 처음으로 배운 위험의 기준점과 삶의 규칙. 멍청한 똥개로 살아왔던 지난 날을 청산하는 기분. 그래서 딱히 싫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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