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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임와쳐] 4

15 실버윙
  • 조회수36
  • 작성일2026.04.04

[플레임와쳐] 


4: 드러나는 불길한 윤곽(2)








그로부터 정확히 이틀이 지났다.



콘테스트에 대한 내용은 아직까지도 전달되지 않았고 특별한 일정도 없었다. 평소와 같은 하루하루였지만 전과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주변에서 누가 이번 당첨자일까 하고 수근수근거리는 걸 들은 때면 맞장구를 치면서도 속으론 그 누구보다도 떨고 있었다. 잠에 들 때면 언제부터 시작될까 하고 고민하고, 사냥을 나갈 때면 이 기분을 언제까지 느낄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곤 했다.


평소와 달리 항상 주늑 들어 있는 모습은 엄마를 미치게 해줬지만, 다행히도 로즈의 유치원 입학 관련 얘기로 요즘 관심이 전부 돌아간 덕에 별 의심없이 이틀을 보낼 수 있었다. 여전히 뭘 할 의욕은 생겨나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이런 저런 일상 활동이라도 하며 간신히 정신줄을 붙들고 있는 나완 다르게 버치는 그 좋아하던 사냥도 내려놓고서는 그 편지 하나로 사십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증오스럽고 짜증난 그 편지는, 지금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다. 보이는 게 아니라 정설인 듯 했다.


버치가 그 업무를 맡아주고 나서부턴 콘테스트에 대해선 별로 얘기하지 않았다. 얘기하고 싶진 않았지만 속으론 다 생각을 하고 있다. 그냥 몸 속이 울렁이는 것만 같았다.


1월 3일, 오늘까지 버텼다. 전전긍긍하면서도, 새해의 그 충격적인 소식을 뒤로 하고도, 계속해서 썰물과 밀물처럼 감정이 요동쳤다. 버치가 편지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지, 그렇다면 뭘 해야 하는지….



혼자 이 누리끼리한 방에 앉아있을 때면 플레임 콘테스트든 가족이든 죽음이든 전부 뒤로 하려 노력한다. 잘 되어가고 있냐 묻는다며는 그렇지는 않았다.


꼭 버치 생각이 아니어도, 내 뇌리엔 항상 그 분의 죽음이 박혀 있었다. 어릴 때부터 꾹꾹 눌러서 평소에는 별로 떠오르지 않지만, 트라우마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이 항상 통제되는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대충 내가 곤란할 때를 쏙쏙 골라서 날 공격한다는 것이다.


좀 그렇긴 해도, 다행히 지금은 곤란한 때가 아니다. 방학이었고, 요즘따라 엄마의 가죽 판매업은 쭉쭉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로즈도 점점 성숙해지는 것이 한 눈에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엄마가 데리고 다녀선지 귀찮게 굴진 않은 덕에 트라우마가 날 공격하러 치솟아도 조금 피곤한 정도이다.



그 분의 죽음.



어쩌면 그 트라우마는 날 성장하게 해주는 강력한 계기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고 되돌아보며 씁쓸하게 생각해 보곤 했다. 그 분이 살아있었다면 난 빨리 성숙해지지 못 하지 않았을까.


그럴 지도 모른다는 걸 안다. 단명하신 것이 꼭 모든 방면에서 슬픈 일로 기억되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만은, 그의 죽음이 나의 슬픔이란 단어의 정의, 어쩌면 가장 강력한 예시이다. 모든 슬픔은 그분의 죽음으로 통한다. 나의 유일한 독창적인 단어 법이다. 나만 그런 것일까. 



나랑 그렇게 친한 버치도, 어릴 때부터 내 손에 자라다 싶이 한 로즈도, 날 낳고 키워주신 엄마도, 그분이 어릴 적부터, 내가 태어날 적부터 같이 살아왔던 마을 주민들도, 내가 혼자서 이렇게 큰 슬픔을 떠맡았는지 모른다. 그들에게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죽음이, 내면엔 엄청난 것이 들어있단 것을, 그 비밀을 내가 알고 있단 것을, 아는 이는 없다.


버치는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지도 모른다. 가끔 나를 힘들게 해주는 트라우마가 그저 평범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와는 다른 종류라고. 내가 그 분을 믿고 따랐다는 것을, 무언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나와 대화할 때면, 적어도 그의 이름이 나와야 할 때면 그 분이라고 명사 대신 대명사를 써준다. 고맙다. 그렇지만 그 역시 알진 못 한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



오늘따라 밤공기가 더욱 서늘하게 날 베었다. 그 날보다 더, 그러니까 내가 편지를 받은 새해의 아침보다도 더.


어쩌면 그 날 이후로, 처음인 걸 지도 모른다. 이렇게… 묘하게 세상을 생각하는 것은. ‘그 날.’ 당연히 그 분이 돌아가신 날이다. 



난 그 분이 돌아가신 날을 돌아가셨다 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 분은 나와 피를 나누지 않은 분이다. 금전적인 도움을 주시지도 않으셨다. 


그렇지만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셨던 분이시기에, 난 그가 하늘로 떠난 그 날을 이렇게 부르며 보낸다. 천사의 날개가 꺾인 날이라고. 촌스러운 작명이지만 애초에 나 하나 그렇게 생각하니 작명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일 뿐.



아마도 오늘 그 트라우마를 멈추기 위해, 녹슨 기억을 꺼내야 할 것만 같다.



‘그 분’ 이 돌아가신 날의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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