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레임와쳐]
6: 잊혀진 전설의 후손들(2)
그 분께서 우리 마을을 방문했던 기억이 아직도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 때 당시로 아직 버치 혼자 따로 떨어져 살고, 로즈는 막 세상에 발을 내딛었고, 엄마는 진통제를 먹으며 하루 24시간 장사에 쏟아부었고, 나는 사냥에 대해 흥미를 보이며 어른들에게 가르쳐 달라고 쪼르던 시기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날 그 분께서 등에 날짐승 한 마리를 짊어들고 오셨을 때, 난 본능적으로 그가 사냥꾼이란 것을 알아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사냥을 배울 수 있겐단 생각에 너무 들뜬 나머지 잠을 설쳤으니까. 그때는 그의 직업에 어떤 일들이 거처로 사용하고 있는지 몰랐기에, 순수하게 기뻤다. 지금은, 꽤나 후회하고 있다.
그 날은 유독 심하게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거의 소나기만큼 쏟아지면서 그 것도 반나절 가까이 끊이지 않는 바람에 당시 하수구 시설이 없다시피 했던 우리 마을은 거의 잠길 때 직전까지 갔다. 그럼에도 나는 밖을 빼꼼 바라보며 언제 비가 그칠지, 언제 사냥할 수 있을지, 언제 사냥을 배우게 해줄지, 이 마을에 진짜 사냥꾼이 있긴 한 것인지, 내 머릿속을 한참을 굴리며 문 밖을 바라보았다.
쏴아아 하고 내리는 비는 마치 커다란 폭포처럼 슬프지만 동시에 뭔가 다른 기분을 주었다. 나는 그 기분이 설렘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 했다. 폭우와 첫 만남,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조합하기는 상당히 어려워 보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밖을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만났다. 날짐승을 짊어진 채 발목까지 물이 올라와도 꿋꿋이 다가오는 그 모습이, 나한테는 멋져보였다. 동시에 드디어 사냥꾼을 만났다는 기분이, 어린 나의 마음속에 모닥불을 부쳤다.
마을 사람들을 깨우고 설명해주었다. 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분께 잠자리를 마련해 주셨고, 그 분은 고맙다는 감사 인사도, 미안하다는 사과도, 심지어 그 흔한 흔탄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우리 마을에서 일주일을 머물었다.
그 동안 그는 계속 사냥을 나갔고, 짐승은 마을 사람들에게 주는 방식으로 계속해서 구역에 눌러앉으셨다. 다부지지는 않은데 왠지 모르게 날렵해 보이는 그는, 그렇게 마을에서 천천히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렇게 일이 풀릴 수록 난 사냥을 부탁하려고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는 왠지 모르게 날 피했다. 다가가기만 해도 움찔하면서 피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난 사냥 훈련을 받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고, 그는 왠지 모르게 놀라면서도 날 노려보았다. 경멸의 시선이라기보다는, 충격, 초조, 불안 등이 한데 섞인 처음 보는 눈빛이었다.
그걸 개의치 않고 훈련을 받았다. 나로선 당연한 것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며 나의 사냥 능력엔 크나큰 변화가 나타났다. 가끔 가다가는 그 분께서도 날 칭찬해 주셨다. 잘 한다고. 자질이 있다고. 그러면서도 그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고 단 한 번도 나에 집중하지 못 하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앉아보라면서 뒷산 정상에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의 표정은 처음으로 온화해 보였고, 처음으로 나에 집중해주는 것만 같았고, 처음으로 나와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난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아직도 희미해지지 않았다.
옛날 옛 적에, 그러니까 넌 상상도 못 할 만큼 예전에, 이 구역들은 모두 존재하지 않았단다. 이런 굵고 날카로운 금속 경계 대신, 모든 곳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자연이 그들을 보살펴주던 아름다운 시기가 있었단다. 학교에선 이 이야기를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야.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 넓은 행성에 얼마 안 남았으니까. 여전히 이 이야기는, 이 옛 기억들은 희미해져 가고 있고, 이를 알고 기억하려 하는 이는 더욱 빨리 희미해지고 있단다.
아무튼 그런 시기가 있었는데, 나처럼 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시기를 이렇게 불러, 용의 시대. 왜 용이냐고? 그건 이제부터 얘기해줄께.
그 시절에는 지금은 꿈도 못 꿀 만큼 아름다운 자연이 있었다고 해. 더욱 놀라운 것은, 그만큼 아름답고 우아한 미지의 생명체가 존재했다는 것이야. 흔히 몬스터라고 불리는 상상의 존재들. 그 것은 절대 상상이 아니야. 실제로 존재했었던 동식물들이거든. 이제 감이 오니? 맞아. 그 생명체 중 가장 강하고, 우아하고, 멋진 존재가 바로 용, 그러니까 드래곤이었다는 것이지. 그래, 그 시절엔 지금은 상상이라고 불리는 미지의 용들이 멀쩡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단다.
그 뿐이겠니? 용들은 전부 각양각색의 외모며 능력, 성격 같이 전부 다른 특별한 존재였어. 같은 모양을 한 용이 단 하나도 없었지. 성격이 같은 용이라면 더더욱 없었어.
용들이 처음 나타난 것이 언제인 줄 아니? 바로 태초야. 태초란, 음, 세상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용들은 이 세상과 같이 나타난 것이야! 신기하지? 그런데 이들이 나타난 이유도 어디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야.
태초가 세상이 처음 생겼을 때라고 했지? 그렇다면 태초 그 이전은 어땠을까? 아직 우주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무의 세계에선 절대신 둘이 있었어. 절대신이 뭐냐고? 음, 아마도 한 세상을 파괴하거나 창조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신적인 존재야. 그렇다면 그 둘이 누구일까? 바로 아모르와 카데스란다.
아모르는 창조의 신, 카데스는 파괴의 신이었어. 그 둘은 사로 세상의 조화를 중시하며 낮과 밤, 빛과 어둠, 유와 무, 창조와 파괴 등을 맡았어. 그렇게 세상을 창조해냈지.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도 넓다 넓었고, 그 둘의 힘만으론 부족할 것 같았어. 그래서 둘은 합의 하에 두 용, 고대신룡과 다크닉스를 자신들의 대행자로 삼으며 창조시켰어. 그리곤 그 용들을 세상의 관리자로 삼았지.
그렇게 세상의 틀이 잡히자, 드래곤들 중엔 빛과 어둠, 그 둘로만 설명하긴 어려운 이들이 나타났지. 그래서 다크닉스와 고대신룡은 각각의 용들에게 속성을 부여했단다.
빛, 어둠, 땅, 바람, 불, 물의 속성을 지닌 드래곤들은 각각의 능력을 발휘하며 세상을 균형 잡았어. 하지만 그 용들도 항상 정확할 수는 없었지. 결국 세계의 한 가운데에 큼지막한 균열이 생기고 말았어.
그 균열을 매우기 위해 고군분투해보았지만 너무나도 부족했던 용들은 결국 아모르와 카데스의 힘을 빌려 균열을 수습했어. 그 과정에서 뒤틀림에서 나온 이들, 즉 지금까지 없던 속성의 드래곤들이 나타났어. 고대신룡은 각각 황혼, 여명, 그림자 등의 속성을 부여해주었지.
하지만 권력에 심취해 가던 다크닉스는 결국 사명을 져버리고 빛의 용들을 공격했어. 시기와 질투가 만들어낸 끔찍한 공격이었지. 결국 전쟁이 일어났고, 고대신룡은 파괴당하는 세상을 보며 여러 생각에 빠졌어. 결국 그는 평화를 위해 희생하기로 했지.
그렇게 고대신룡은 다크닉스를 봉인하기 위해 자신도 봉인당했어. 그렇게 용들은 힘을 잃었고, 모두 바스라지듯 사라져버렸지.
하지만 모두 사라짐 것은 아니야. 온전하진 않아도 그들의 선택을 받은 소수의 후손들이 있으니까. 그 후손들 중엔 그 사실을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어.
나? 나는 그 후손들 중 하나란다. 어떤 용의 후손이냐고? 글쎄, 그것까진 나도 모른단다.
하나 확실한 건, 여전히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뭐, 시간을 너무 뺐었구만. 하소연해서 미안하다. 뭐, 흥미로웠다면 다행이겠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로 하자. 늦었으니까.
너희 어머니한테는 비밀로 해줄 수 있니? 이 구역에서도 미친 사람으로 찍히고 싶진 않아서. … 그럼 잘 가렴. 나도 뒤 따라 내려갈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