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12 제 삼자 (1)
“뭐냐고, 너.”
태연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석두는 감각을 우선으로 믿었다. 항상 감각이 그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 감각이 이토록 쓸모없던 때가 있던가.
“내가 뭐냐고? 무슨 질문일까…?”
첫 번째의 앞에서도 당당하던 석두가, 망설였다. 이토록 승산이 없어 보이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너, 용인 아니잖아. 그렇다고 인간도 아니고.”
“아…? 그걸 단번에 알아챘어? 대단한데? 내 연기는 완벽할 줄 알았는데….”
“넌 뭐지?”
“뭐, 불쌍한 사람이었지. 지금은 우연히 널 만난 거고.”
그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었다. 아마 지금이 본래 성격인 것 같았다.
“우연이라기엔 타이밍이 기가 막히던데.”
석두는 계속 경계했다. 너무나도 정교한 타이밍에 이곳에 왔으니 의심할 만도 했다.
“난 분명 널 처음 봐. 하지만 넌 아닌 것 같은데.”
그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석두의 어깨를 툭 쳤다.
“예리한데? 근데 너무 경계하진 마. 난 정말로 호의를 가진 채로 널 보고 있거든. 그러니 그렇게 경계하면 난 좀 서운하다. 방금 위험한 상황에서도 벗어나게 해줬잖아? 혹시….”
그가 턱에 손을 대고 이상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나? 그건 좀 헷갈려서 말이지.”
“잡담은 싫고, 날 지켜본 이유가 뭐야.”
그는 눈을 가늘게 뜨다가 석두의 말에 동의했다.
“좋아, 시간은 소중하니까. 난 제로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네 도움을 받고 싶어서 그런데 나 좀 도와줄래?”
“도와줄 사람을 찾는 거라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흐음…. 하지만 너만 한 인재가 없어. 특히 첫 번째의 존재감을 보고도 무작정 달려드는 그 모습,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
“..목적이 뭐야.”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줄 생각이 든 거야?”
당연히 아니었다. 아까 전의 대답으로 석두의 경계심은 더더욱 올라갔다. 첫 번째를 아는 것, 그리고 석두가 그와 대치했다는 사실은 그곳에 제로도 있었다는 사실이 되었다.
“들어보고.”
그 뜻은 네 번째가 납치되었던 일에 제로가 연루되어있을 확률이 높다.
“좋아, 시간이 없으니 좀 빨리 말해줄게. 광천은 곧 사라질 거야.”
“계승전 때문에?”
석두는 이미 아는 얘기였다. 이미 가리온이 해준 말이었으니, 비록 사라진다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들끼리 싸우는 계승전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석두는 그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내가 그런 거 갖고 호들갑을 떠는 거로 보여?”
제로의 분위기가 살짝 달라졌다.
“왕좌 싸움…. 뭐 소란은 일어나겠지. 하지만 그 정도론 딱히 소란도 아니야. 그놈들은 중요한 걸 못 보고 있다고.”
“그게 뭔데.”
“그전에 먼저 질문 하나 해볼게, 네가 보기엔 난 뭐 같아?”
제로가 양팔을 피며 말했다. 새삼스러운 말이었다. 자신을 보고 '뭐 같냐'는 질문은 처음이었다. 이곳에서 인간이면 인간, 용이면 용이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구분이 되었다면 질문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았다.
“겉모습은 분명 인간이야.”
겉모습은 명백히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감각은 상대의 본질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용은 저마다 다른 기운을 내뿜는다. 불이라면 뜨겁게 일렁이고, 물은 가볍게 흐르며, 바람은 쉽게 흩어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같이 전혀 다른 흐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 용의 기운이 느껴져.”
용병 생활하면서 많은 종족을 보았다. 그 미세한 차이도 구분할 수 있는 그의 감각이었지만 제로는 달랐다. 용과 인간이 뒤엉키고 뒤틀린, 억지로 둘을 이어 붙인 기운이 느껴졌다. 그를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기 어려웠다.
“너는 네가 뭔지 아는 거야?”
“사실 나도 잘 몰라. 대답해줄 사람이 없어졌거든. 여기서 두 번째 질문, 근데, 나같은 녀석이 하나일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오래전 맺어진 용과 인간의 화합. 잘 이뤄졌다 생각했겠지만…. 과연 모두가 찬성한 걸까? 그들의 힘을 이겨낼 방법이 과연 없을까? 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단 말이지….”
제로는 갑자기 빠르게 혼잣말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강제적으로 만들어졌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그리고 내던져졌지. 그 어떤 말도 없이. 버려졌어.. 그리고 분노했지. 아마 이곳이 첫 번째가 될 거야.”
“잠깐, 이해하기 어려워.”
제로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말했다.
“빠르게 이해할 필요는 없어. 단지, 다음에 만나면 날 좀 도와줘.”
“왜 자꾸 혼자 말하고….”
석두는 그 녀석의 어깨를 세게 잡으려고 했다.
“우리는 분명 서로를 도울 거야. 그런 느낌이 나거든.”
그때 뿌리치는 제로의 어깨를 석두는 잡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제로의 모습이 일렁이며 사라졌다.
“나이스 타이밍, 하나이.”
“어때, 만났어?”
하나이는 소파의 팔걸이에 핸드폰을 올려놓으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제로를 슬쩍 쳐다보며 마치 제로가 석두를 만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응, 무섭던데. 엄청.”
“제로가 무섭다고 하니,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가늠이 안 되는걸.”
“강한 건 맞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야. 그런 눈을 한 사람들은 보통 종잡을 수 없거든.”
제로는 아까 석두가 잡은 어깨를 주물렀다. 조금 아파서 셔츠를 걷어보니 멍이 들어있었다. 그는 약간 놀라며 셔츠를 다시 올렸다.
“어떤 눈이었는데?”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않는 눈. 그런 사람들은 다루기 어렵단 말이야.”
“완전 제로네.”
그리고 초인종이 울렸다.
“어, 왔다.”
하나이가 신난 발걸음으로 문 앞으로 갔다.
“뭐가 온 거야?”
“행사하는 빙수 배달시켰거든, 제로도 먹을래?”
“난 됐어. 오래 뛰어서 쉬고 싶거든.. 루 오면 나눠 먹어.”
“힘들 때 이게 딱 맞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루는 언제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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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려입기까지 하니까 괜히 긴장되네….’
“네 번째님. 떨지…. 말라고! 응, 내가 있으니까….”
“하나님, 많이 긴장하셨나 봐요.”
네 번째의 말투가 바뀌었다. 지칭도 다르게 해주었다. 제대로 격식을 차린 모습이 어색했다. 오히려 손을 떠는 하나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그…. 그럴 리가요! 비록 이런 데는 처음이지만…! 저도 든든하답니다.”
“하나님이 있으니까 안심되네요.”
환하게 웃어주며 초대의 방에 들어갔다. 방에는 초대를 포함한 초대의 자식들이 앉아있었다. 가장 첫 번째로 맞이해준 건 두 번째였다.
“네 번째야. 가장 늦는구나? 이런 데는 원래 네 번째가 가장 빨리 와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일부러 마지막에 불렀다.”
“흐흠….”
초대의 말에 목을 가다듬고 웃음기도 뺏다.
“빨리 앉으시죠. 네 번째. 초대님께서 이미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다음으로 말한 건 의자에 앉은 가리온이었다.
“네, 세 번째님. 다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얘기를 시작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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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익숙한 이름이죠? 과연 그들은 뭘 준비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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