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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ons Ep.2 물안개

16 실버윙7
  • 조회수20
  • 작성일2026.08.03

Talons


Ep.2

물안개











서너시간 동안 계속해서 들판을 뒤진 보람은 상당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확실히 적성이 맞는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노동은 행복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그나마 약초를 찾는 일은 그렇게 난이도가 높다거나 하는 어려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 만약 뭔가를 더 찾으려 했다면 뻗었을 것 같기도 하다. 



드리프트는 붉은 빛이 감도는 엉겅퀴를 물고 뭔가를 뱉고 있었다. 엉겅퀴를 물어본 적이 있어서 알지만, 뭐, 사실 모든 약초가 그렇긴 하다만, 쓴 맛은 이틀이 지나도 안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이해가 상당히 잘 갔다. 당장 지금만 해도 방금 전까진 나도 도라지를 한 다발 물고 있었기에 혀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쓴 맛이 세게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도라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으로 물고 그를 향해 다가갔다.



“으으, 너무 쓰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지고 온 가방에 천천히 도라지와 엉겅퀴를 모아서 담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대형 페어가 시작하기에 그전에 늦지 않게 산을 내려가려면 전속력으로 날아야 할 것이다. 물론 나 대신에 드리프트가 가는 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고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니까.



드리프트가 봉지를 들고 물었다.



“뭐 사올까. 양이 적진 않아서 잘 퉁 치면 뭐 건질 만 할 텐데.”



“글쎄, 그냥 동생들 먹을 만한 거 좀 사오지?”



“불 피워놓고. 알지?”



나는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알겠다는 표시를 한 뒤 멀어져가는 드리프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담담한 뒷모습이 어느새 살짝 살짝 노을 지기 시작한 하늘에 비쳐 거뭇거뭇하게 반짝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도 우리만의 거처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하늘에서 천천히 눈을 떼었다.



.

.

.



우리 만의 거처, 흔히 우리끼리는 은신처라고 부르는 동굴 안에는 온갖 비상식량부터 무기, 물건, 잠자리까지 대부분의 필수 물품들이 구비가 되어있었다.


이 동굴을 발견했던게 언제였더라. 아마도 우리가 8살 때 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이렇게까지 삶이 힘들지 않았고, 우리 아래로 동생도 좀 더 적었다. 그리고 내가 이사 가기 전이었고… 그러다 보니까 웃는 일이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확실히 지금보다는, 일할 것도 적었고 삶에서 보람을 찾을 줄 알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어렸을 적을 생각하면 항상 시간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남은 기억들이 평소보다 더 초췌해져 보이는 바람에 나는 과거 기억을 회상하는 걸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만일 우리 삶이 좀 더 나았다면, 반대였을지도 모른다.


작게 중얼거리며 나는 매고 온 가방을 동굴 모퉁이에 기대어놓았다. 이 가방도 참 오래돼었는데. 나는 돌아올 그를 기다리면서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식탁이라는 이름조차도 너무 거창해보일 정도이긴 했지만, 이 편편한 돌바위가 그나마 이 동굴에선 식탁 노릇을 하곤 있었다. 사실 정리라 해봤자 치울 것도 없었고 그나마 한 일이라곤 불을 피운 것 밖에 없었다.



부싯돌을 부딫치며 불을 피우자 동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부싯돌은 몇 번 쓰면 달아서 금방 바꿔줘야 했다. 불이 잘 붙지 않는 걸 보니 이번 것도 금세 헤진 듯 했다. 며칠 뒤에 바꿔야 겠네 싶었다.


나는 가을에 불을 피우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은, 번지는 불씨를 바라보면서 산불이 언뜻 기억나기도 했기 때문이다. 산불은, 나에게… 참 많은 걸 빼앗아 갔다. 어쩌면 내 가족의 희망을, 그 전부를…



“뭐 해.”



드르륵 긁히는 소리를 내며 들어온 것은 드리프트였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나는 웬일로 사납게 나온 말투에 살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뭔가를 잔뜩 물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털며 일어서 식탁으로 갈 수 있게 비켜 주었다. 



”뭐 사왔어?”



“글쎄, 뭐가 많진 않았어.”



나는 천천히 다가가 봉지들을 열어보았다.


치즈와 버터 한 조각, 소금 한 줌. 나름 소박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나름 만족은 할 만했다. 저녁을 대충 떼울 수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빡빡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동생들을 생각하면… 어차피 집에는 비상식량으로 말린 빵이 몇 조각씩 있긴 했지만, 오늘 어차피 비워질 것이었다. 남길 필요가 많았다.



나는 식칼을 대충 잡고 치즈와 버터, 소금을 반으로 나누었다. 



“먹어도 돼?”


“어, 먼저 먹어.”


나는 그걸 다시 반으로 나누며 소분을 하였다. 나뿐만 아니라 드리프트도 가족이 있으니까. 약초 두 묶음으로 모두를 먹여 살리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그런 일은 감수해야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도심이 아닌 시골 마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진짜로 목숨을 걸지 않으면 죽는 수는 쉽다.



나는 소분을 대충 끝낸 뒤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래도 항상 일을 하고 나서 먹는 것은 맛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냥 보람이 살짝 차서 그런가, 좀 더 맛이 있는 것 같다.



“아, 맞다. 무명실이나 천 조각 있어?”



“왜, 뭔 일 있어?”



“하… 세리네가 옷을 찢어서 말이지. 바느질 좀 해달라고 가지고 오긴 했어.”



그는 천천히 찢어진 옷 조각을 내밀었다. 세리네, 드리프트의 막내 여동생. 또 일을 벌린 모양이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돌 선반을 뒤졌다. 있을 만 한데… 



툭.



나는 떨어질 뻔한 무명실 타래를 들어올렸다. 마침 옆에 마직물 조각도 몇 장 놓여있었다.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빛을 받아 나름 환한 곳으로 다가가 옷을 고치기 시작했다. 드리프트는 잠시 떠돌더니 동굴 밖을 쳐다보며 뭔가를 중얼거렸다. 덕분에 밖을 보니 어느새 밤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하기야 아마도 지금쯤 저녁 7시가 넘지 않았을까. 오늘도 밤을 새야 할 것 같기도 했다. 



“나 나갔다가 올게.”



“왜?”



“그냥, 약초 좀 더 구해올라고. 말려노면 내일 요긴할 것 같아서.”



“뭐… 맘대로 해.”



.

.

.



나는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좋아하고, 또 나름 또래 중에서는 잘하는 편이었다. 지금도 가끔 바느질을 할 때면 여전히 실력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닌지 금방금방 일이 끝나고는 한다.


여전히 드리프트는 도착하지 않았고, 밤은 계속해서 깊어가고만 있었다. 나는 방금 고친 옷을 만지작이며 바깥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암흑이 내려앉은 산은 칠흑으로 뒤덮인듯 새까매 보였다. 얼마나 더 지났을까. 아마도 오늘도 일찍 집으로 돌아가기엔 그른 것만 같아서 나는 옷을 정리한 뒤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밤을 샌 적도 없지 않긴 했지만 드리프트를 기다리는 일이 도통 재밌지는 않았다. 아마도 새벽이 되면 우리 둘 다 집으로 떠나야 할 것이다. 그 전까지는 동굴이 있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재밌다고 할 수 있다.


동굴 잠자리는 이끼로 만든 둥지처럼 생겼다. 가끔씩 이끼를 뜯어와 잠자리를 바꿔주곤 하는데, 상당히 편하다. 오히려 집의 누더기 침대보다도 편할 정도이다. 아니면 누더기 침대가 불편한 것이거나. 어쨌거나 동굴에서 밤을 지내는 것은 집에 있는 것보다 오히려 조금 더 편할 정도로 상당히 쉬운 일이다. 익숙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곳엔 매일 밤 드리프트와 있으니까.



나는 장작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피로가 쏠려왔지만 그래도 너무 깊게 잠에 빠지지는 않도록 최대한 얕게 고랐다. 그럼에도 잠이 나를 덮치는 게 느껴질 정도로 피곤했다.



.

.

.



“깼어?”



다행히도 내가 잠에서 일어났을 때 쯤에는 드리프트가 내 옆에 누워 있었다.


약초 냄새가 강하게 나는 걸 보니 밤을 새 구하고 다녔던 것 같다. 어차피 내일 저녁까진 팔지도 못 하는데 참. 그러고 보니 구해온 약초를 또 말려나야 했다. 나는 코를 찡그리며 천천히 일어섰다.



“뭐 구했어..”



“많이 구하진 못 했지. 세이지랑 로즈마리 조금.”



나는 구석에 놓은 약초 뭉치를 동굴 살짝 바깥쪽에 걸어 두며 말했다.



“몇 시쯤인지 알아?”



“한… 새벽 2시?”



“그리고 옷 만들어놨어. 가지고 가.”



드리프트는 아 맞다라는 듯의 입모양을 지으며 옷가지를 집어 자기 가방에 쑤셔넣었다. 나는 말릴 약초를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내시고는 새벽빛을 받아 약간 알록한 색감의 숲을 바라보았다. 드리프트가 내 가방을 물고 와주었다. 나는 작게 고맙다고 한 뒤 가방과 활을 매고 천천히 날개를 점검했다.



나는 작게 날개를 떨며 비행을 시작했다. 산 위쪽에는 공기가 없어 날기가 불편했다. 하지만 늦었을 때는 어쩔 수 없기도 했고, 그냥 빨리 가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이 있었다. 나는 새어 나오려는 하품을 꾸역꾸역 차으면서 산봉우리를 내려갔다. 아직은 어두운 하늘이 날 비쳐주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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