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15 제 삼자 (4)
석두는 광천의 호텔로 돌아왔다. 그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은밀하게 움직였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객실에 돌아왔다.
‘실력은 아직 죽지 않았어.’
“아저씨?”
엉성한 자세로 현관문 앞에 서 있는 석두를 네 번째와 송하나가 보고 있었다.
“그 자세는 뭐야? 형씨.”
송하나가 웃는 것 같았지만 석두는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옆 소파에 앉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잘하고 온 건가?”
“잘하고 말고 정도가 아니지.”
하나는 석두에게 초대의 말을 전했다.
“의외네, 그걸 모두가 승낙했다고?”
“내 말이 그거야. 근데 형씨, 수상하지 않아? 심지어 전엔 첫 번째님이 직접 네 번째님에게 계승식에 오지 못하도록 막아달라 했잖아.”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직접 경험해 본 게 아니니 도무지 감이 안 잡혀’
“아무튼 형씨도 두 번째님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 ㅋㅋ 그때 식당에서 받은 굴욕을 생각해보면…!”
송하나가 주먹을 쥐었다.
“네 번째님은 어떻게 생각해? 다들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여?”
“제가 낸 의견이긴 했지만… 다들 초대님의 압박에 강제로 승낙했을 거예요. 첫 번째 형님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두 번째님은 쉽게 포기할 것처럼 보이지 않으셨거든요. 더군다나 그 ‘준비’라는 것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고요.”
“보나 마나 계승전을 이기기 위한 수단이겠지. 어쨌거나 원래 방식은 후계자가 한 명밖에 남지 않는 거라며? 근데 네 번째님이나 형씨 말 들어보면 첫 번째님을 이길 방법은 도저히 못 찾겠던데…”
“어쩌면 그 준비라는 게 첫 번째를 이길 수 있는 수단을 찾는 걸 수도 있겠지.”
“에~이 설마~? 뭔지도 모르겠는 그 첫 번째님의 기이한 힘을 이기는 방법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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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젠장! 거의 다 된 거였는데! 네 번째가… 도대체 무슨 수로 초대를 꼬드긴 거지?”
두 번째가 책상 위에 있는 자료들을 모조리 쓸어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두 번째님 혈압과 심장 박동 수가 올라가고 계십니다. 신속히 안정을…”
“닥쳐! 지금 이 상황이 진정될 수 있을 것 같아?”
두 번째의 드라고노이드 비서가 그의 건강을 스캔했다. 그에게 안정을 유지하라고 말하려 했으나 두 번째의 손에서 빛나는 파편들이 생겨나며 드라고노이드의 머리를 관통했다. 머리가 산산조각이 난 드라고노이드는 주춤하다가 쓰러졌다.
“20년이야.. 20년! 광천을 계승 받기 위해… 그 망할 놈을 제치기 위해 내가 노력한 시간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고…!”
유력한 계승의 후보는 언제나 첫 번째였다. 초대의 가장 짙은 피를 이어받았으며 힘, 지략, 인품마저 그를 뛰어넘을 수 없다. 모두가 첫 번째를 초대의 후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몰랐던 사실은 그가 초대의 자리에 욕심이 없다는 것. 두 번째는 그 진실을 알아차렸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광천의 후계라는 자리에 걸맞게 사람을 모았다. 되는대로 힘을 모았다.
“이제 남은 건…. 벽천뿐인가.”
일곱 중 세 도시와 손을 잡았다. 이제 한 도시의 협력만 있다면 확실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네 도시의 지지를 받게 된다면 나머지 세 도시는 알아서 받들게 될 것이다.
순조로운 계획이었다. 어느 날 초대는 후계들을 불렀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가 회의에 참석했다. 그때도 초대가 먼저 후계에 대한 말을 꺼냈다.
“요즘, 여섯 도시가 가장 궁금해하는 주제가 뭔지 아는가. 바로 광천의 후계에 대한 소식이다.”
광천의 세 도시가 두 번째를 지지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두 번째가 가장 어울릴 재목이라고 말할 법도 했다.
“첫 번째, 의견이 있는가.”
모든 게 순조로운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대가 그 말을 하자마자 두 번째는 불안해졌다.
‘왜 내가 아닌 첫 번째님을…?’
어쩌면 별일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가장 지혜로운 게 첫 번째였으니 먼저 질문을 한 것도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하며 불안을 떨쳐보려고 했다. 그러나 첫 번째의 답은 그의 불안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
“계승전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계승전?”
첫 번째가 계승전을 언급하고 말았다. 내용은 단 하나의 후계만이 남는 것. 이미 첫 번째의 실력을 알고 있는 두 번째는 심장에 벼락이 떨어진 것만 같았다.
“첫 번째님? 어째서입니까!? 첫 번째님은 그 자리에 관심이 없으시지 않으셨습니까?”
회의가 끝난 뒤에 두 번째는 첫 번째에게 물었다.
“네 말이 맞다.”
“그럼 계승전은 도대체…!”
첫 번째는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감히 탐을 내어선 안 되는 자리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아니… 무슨 소리십니까…?”
세 번째 또한 광천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그건 분명 두 번째를 향한 말이었다. 첫 번째의 말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가 되물은 질문 속에는 한 마디가 빠져버리고 말았다.
‘왜 저는 안된다는 것입니까?’
“갑자기 계승전을 중단해…?”
멋대로 초대가 시작해버린 계승전을 이번엔 멋대로 계승전을 중단시켰다. 첫 번째의 의견을 쉽게 승낙했던 초대가 이런 식으로 쉽게 마음을 바꿀 리가 없었다.
계승전이 시작된 이후로 지지를 얻었던 세 도시 중 두 도시가 첫 번째에게 갔고 나머지 두 도시마저 첫 번째를 지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첫 번째가 후계를 잇는 건 당연한 순리. 두 번째는 자칫하다간 광천의 자리를 빼앗길 위험을 느꼈다. 계승식을 멈추자고 한 인물이 네 번째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어째서 첫 번째의 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초대가 승낙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제안이었길래,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 녀석의 제안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인 거지…?’
두 번째는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길을 막으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이럴 순 없어…. 왜…. 왜 난 안 되는 건데…!”
두 번째의 심장이 미친 듯이 조여왔다. 무언가가 심장을 파고들며 고통이 느껴졌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지 마!”
두 번째가 소리가 들린 문 방향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드라고 노이드의 머리를 박살 냈던 그 파편들이 스파크를 튀기며 두 번째의 주변에 떠 있었다.
“두 번째여, 안에 있는가.”
‘...이 목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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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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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묘사가 있습니다*
“형씨는 밖에 나갔다 온 거지? 무슨 일 있었어?”
그날 밤 송하나와 석두는 앞에서 보초를 섰다. 하나는 긁힌 것 같은 그의 옷자락을 보며 말했다.
“별일 없었는데.”
“별일 없었던 사람이 다치고 들어오면 되나? 빨리 말해. 나 이래 봬도 눈치 빠르거든.”
“그냥 가족을 만났어. 예전 가족.”
하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그 전에 말한 그 가족? 근데 그 정도로 싸운다고?”
그리고 양팔을 감았다.
“형씨, 도대체 무슨 가족을 둔 거야…. 막 마피아 조직이었던 거 아니지? 이런 도시에서 그 정도 깽판을 치는 거라면…. 광천으로도 막기 힘든 거 아니야?”
“그 정도 아니야….”
겁을 먹은 송하나를 보며 석두가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희미하게 웃었다.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며 석두는 용병 시절을 떠올렸다.
“쉽게 떼어지지 않네….”
“원래 그래 가족은 쉽게 떼어낼 수가 없는 거야.”
송하나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에 하려고 했던 말이지?”
“어떻게 알았지? 아무튼 그래, 가족은 그런 거더라고.”
“너도 그런 적이 있었어?”
“있었지. 독립이라고도 하긴 하는데. 내 쪽은 좀 달랐어. 아버지가 좀 괴팍하셨거든. 동생이랑 나랑 엄청나게 맞았는데…. 한 번 도망치려고 했다가 잡혀서 그날은….”
그걸 말하는 송하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되는데.”
그녀는 석두의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하다가 싫은 듯 쓰리게 웃었다.
“...난 그때 엄청나게 맞을 줄 알았거든? 근데 그때 아버지가 펑펑 울더라. 세상이 떠나갈 듯이. 그때 이상하게 나도 마음이 아프더라고. 그렇게 증오스러운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미운 사람이었는데 고작 그 사과로 미련하게….”
“그럼 지금은 어떻게 됐지?”
“아버지랑 같이 살아. 평범하게…. 그 뒤로는 우리를 건들이지도 않으시고 안정적인 직업도 얻으시더라고. 그 덕에 동생도 잘 크고 있고, 나랑 아버지가 전적으로 보살펴주고 있거든. 동생은 대학교 합격한 뒤에 독립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다 같은 크기의 상처를 가질 수는 없으니까. 뭐 아무튼? 지금은 괜찮다~ 이 말이지.”
석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이고 춥다…. 형씨 나 먼저 들어가 봐도 되지?”
‘이게 목적이었나.’
“마음대로 해.”
“역시 믿을만해. 그럼 부탁한다고.”
송하나는 차가운 것 같은 몸을 손으로 비비며 안으로 들어갔다. 석두는 문이 닫힌 뒤. 고개를 숙이며 생각했다.
‘감은 좋은데... 거짓말을 잘하진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