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루(龍淚)
written by. 블랙룡
신룡의 아이, 아니 용아(龍兒) 디세트리온은 빠르게 달린다. 아직 미처 자라지 못한 가녀린 팔에 생채기가 생겨도, 닳아 버린 신발의 밑창 사이로 나뭇가지가 발을 찔러도 모른다는 듯이 더욱 세게 달린다. 고작 샐러맨더 둘을 부를 수 있을 정도밖에 마력이 남지 않았기에 아껴야 했다. 한때는 매끄러웠던, 그녀가 아꼈던 우윳빛 다채로운 머리카락은 엉망으로 헝클어졌지만 그걸 신경쓸 때는 아니었다. 디세트리온은 달리며 눈을 감았다. 그들과 그 사이에 고작 1마일 정도의 거리밖에 남지 않았다. 유일하게 쓸모가 있는, 신룡 특유의 끈질긴 체력과 정신력으로 달려야 했다. 깨물은 입술 사이 피가 맺힌다. 하지만 달려야 한다. 아니면, 죽음뿐이다!
\"테온, 테온! 그들이 오고 있어!\"
\"...어머니...? 여긴, 무슨 일이에요?\"
\"인디고가 그들에게 잡혀갔어. 그 다음 목표는 너다! 여긴 엄마가 어떻게 해 볼 테니, 천룡계로 먼저 가 있으렴!\"
\"어머니는요? 그렇게 절박한 상황에, 어머니는 어떻게 하려고요?\"
\"내가 너랑 같이 가면 천룡계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왜 그러니. 지금 성룡들이 모두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
용아병. 용의-아이-병사. 애초에 힘으로는 드래곤과 대적되지 않던 인간들은 점차 이상한 욕망을 품기 시작했다. 드래곤 슬레이어- 1000년 전만 해도 정신 나간 소리라 불렸겠지만, 그들이 어느 날 용의 아이를 잡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인간들이 납치한 것은 잠시 외출을 나온 흑룡의 아이 크레센트. 성룡에 비해 월등히 힘이 약한 해츨링이었기에 그들이 다루기에는 식은 죽 먹기였다. 웃으면 반달같이 접히는 눈이 유난히 예뻤던 원명 크레센트(crescent)는 산 채로 개조되었다. 절망의 아이, 데스페어. 첫 번째 용아병.
데스페어는 의지가 없는 용이었다. 본체에 강화석과 마나석을 삽입하고 강화에 강화를 거듭한 그의 힘은 거의 고룡의 힘에 달했고, 껍질의 단단함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용아병 데스페어가 힘이 셌던 이유는 바로 크레센트가 흑룡 수장의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수장의 후계자. 그것을 몰랐지만 욕망이 극에 달한 인간들은 곧 마나가 밀집된 곳을 찾기 시작했다. 고룡들은 모두 천룡계에 머물기 때문에, 거리낄 게 없었던 그들은 질주를 시작했다. 두 번째 목표는 청룡의 아이, 하늘빛 비늘이 비단 같았던 시안이었다. 시안(cyan). 물의 정령과의 친화력이 높은 청룡들- 그 중에서 특히 \'용아\' 였었지만 최상급 정령을 부를 수 있었던 시안과 인간들의 대접전에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고작 용아가 고룡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기에. 시안은 동결된 상태로 이동되었다. 최후의 순간에 다른 용들에게 전령을 보내었다는 게 다행인 점이었다.
용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단지 크레센트가 한 순간 유희를 즐기러 나갔다 생각한 흑룡의 수장들, 수면하고 있던 성룡들도. 성룡들 몇십여 마리가 살아 숨쉬는 인간계는 난리가 났다. 섣불리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먼저 용아들을 모두 천룡계로 보냈다. 용아들 중 가지 않은 것은 디세트리온. 오직 그뿐이었다. 한 달 만에 두 마리의 용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탐지기에 잡히는 것은 아마 디세트리온 그뿐일 것이다. 어제 용아들을 천룡계로 보냈기에 오늘은 고룡들이 내려오지 못한다. 지금 잡히면 자신도 개조되는 것이었다.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밤에 가끔 아른거리는 서큐버스가 장난을 치는 것이었으면.
디세트리온- 아니 테온은 눈을 질끈 감았다. 천룡계로 통하는 산에 결계가 쳐져 있어 본체로의 상호 변환도 불가능하다. 지금 이 상태로는 죽어라 천룡계까지 뛰는 방법밖에 없었다. 몸의 고통이 산 채로 개조되는 고통보다 더하랴. 두고 온 엄마가 걱정됐지만 달려야 했다. 치렁치렁하게 기른 머리카락도 칼로 대충 자를 수밖에 없었다. 근처에서 엄청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안 돼, 거의 다 왔는데, 더 이상은 안 돼!
뒤쪽에서 새하얀 빛이 폭사되었다. 몸으로 체감할 수조차 없는 어마어마한 마력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천룡계인데. 아아... 조금만 더 가면 살 수 있는데! 뻣뻣한 목을 애써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Despair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그는, 어릴 적 자주 그 맑은 푸른 눈을 빛내면 장난을 칠 수도 없었던 순수했던 그. 그 벨벳처럼 매끄럽던 몸 여러 곳에 마석이 박힌, 푸른 눈을 요사스레 빛내는 그는 크레센트였다. 아니, 크레센트가 아니었다. 데스페어(Despair). 크레센트의 껍데기였다. 데스페어의 입 부근에 마나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브레스다. 저것에 닿으면 아직 약한 자신의 몸은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브레스! 어쩔 수 없었다. 샐러맨더를 불러 날기 시작했다. 마나가 거의 떨어져 갈 때쯤에는 마법진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얼마 남지 않은 마법진에 도착할 때까지 데스페어는 브레스도 멈추고, 그저 푸른 눈을 빛내며 테온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자신이 볼 수 있는 마지막의, 껍데기라도 크레센트의 것이다. 마법진이 아래로 끝없이 자신을 끌어당겼다. 아른거리는 엄청난 크기의 흑룡을 마지막으로 테온은 정신을 잃었다.
드빌은 정말 오랜만에 하는 것 같네요. 업데이트도 많고 새로워요!
보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 자급자족하는 저랍니다... 잘 지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