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또 전부 태워버렸다.
난 아무 것도 안했는데.
그저 곁에만 다가갔을 뿐이었는데.
놀고싶었을 뿐이었는데...
친구가......
타버렸어......
항상 나는 이래. 내가 싫어.
마을 사람들도 내가 싫은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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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괴물이었다.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존재였다. 불의 능력을 가졌지만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그는, 수많은 것들을 태워버렸다. 집, 물건, 그리고 친구. 마을 사람들은 결국 그 아이를 얼음의 기운이 가득한 동굴 속에 유폐시키는 길을 택했다. 그것이 현재로써는 최선이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믿었다.
◆
"ㅊ..추워...."
동굴 안은 얼음으로 둘러싸인 만큼 굉장히 추웠다. 그의 능력마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추위였다. 그는 안에서 자기 능력을 끌어올려보았다. 자신 주변의 한기가 가시며 주위의 얼음이 녹아내렸다. 그는 그 상태로 동굴 안을 구석구석 살폈다. 안에는 사람의 뼈가 있었다. 곧 타서 재가 되어 버렸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동굴의 얼음이 녹자, 곧 공기가 따뜻해졌다.일단 그는 자신의 불을 최대한 자신 안으로 들였다. 그러고 나서, 그 사람이 발견된 곳 뒤를 살펴보았다.
그 뒤에는 놀랍게도 수많은 책과 식량이, 아직 썩지 않은 채 보관되어 있었다. 그는 책장 틈에서 편지를 발견하고 쭉 읽어보았다.
'레만에게.
자네가 그 동굴에서 뭘 연구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자네가 무사하길 바라네. 그래야 자네 목의 현상금이 건재할테니까. 그리고, 탈출같은 허튼 생각 집어치우고. 우리가 포위망을 쭉 좁혔으니까. 언제 한번 찾아가지. 자네가 머리를 순순히 내놨으면 좋겠군.
- 옛 친구 콴들로부터.'
"친구...?"
그는 친구라는 말을 잠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그제야 생각해냈다. 친구라는 것은, 최소한 자신은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임을. 뭐든 근처에 가면 다 태워버리는 자신이었다. 그는 영원히 혼자였다. 그것만은 확실히 자신이 자각할 수 있었다. 그는 혼자다. 영원한 혼자.
"현상금...탈출...."
그는 그 편지에 나왔던 대사를 읊어보았다. 아마 좋지 않은 내용일 것이라고 그는 짐작했다. 고로 이 장소도 썩 좋은 곳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일단 배를 채웠다. 음식은 먹을만 했다. 그 뒤 침착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 결과로 찾은 단검. 단검은 꽤나 예리했고 검은 빛 가운데 붉은 빛이 언뜻 보이는, 신비하면서도 이상한 광물로 되어 있었다. 일단 그것을 챙긴 그. 뭔가 비싸거나 아니면 도움이 되거나 정도로 생각한 그가 단검을 손에 쥐었다. 단검은 예상 외로 가벼웠다. 근처에서 찾은, 비슷하게 생긴 단검은 그 단검에 비해 몇배는 무거워 그의 힘으로는 10분 이상 들고 있을 수 없었다. 그 단검은 버려둔 채, 동굴을 유유히 빠져나오려 했던 그는 엄청난 규모의 마법진에 가로막혔다.
"마법진이..."
그리고 그 밖에서, 그는 마을 사람들의 야유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괴물! 밖엔 더이상 나오지 말란 의미에서 우리가 걸어뒀지!"
"하- 이젠 태울 것도 없으니 어떠신가? 응?"
"불요괴야 꺼져라-! 불요괴야 꺼져라-!"
'불요괴'. 그가 지금보다 어릴 적, 그러니까 5살 때 부터 따라다니던 수식어였다. 그는 화가 치밀었다. 자신 안의 불이 몸을 빠져나와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자각 했을 땐, 이미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남은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야유했다.
"하- 마법진이 돈값을 하는데? 멋져!"
"불요괴야. 이제 뼈가 될때까지 거기서 살아라. 알았지?"
◆
동굴 안으로 들어온 그는 차분히 자신 안의 불을 가두었다. 그는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책장의 책이 눈에 띄었다. 차분히 그것을 펼쳐보는 그. 순간, 고대의 지식이 그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왔다. 그는 밖으로 나가, 그 지식에 따라 손을 앞으로 내민 후 지식속의 주문을 사용해 보았다.
"Lif isli keof cu pof cof fie..."
그것은 마법이었다.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비술이었다. 그의 손에서 불길이 쭉 나가는 것을 보자, 그는 나머지 지식에도 흥미가 동했다. 그는 손을 내렸다. 그러자 불길도 뚝 멈췄다.
그는 지식을 마치 스펀지처럼 흡수해 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 고대의 지식 속에서도, 나가는 법은 나오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점점 변해갔다.
◆
그가 탈출구를 찾아 헤멘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그는 혼자 있으면서 예전의 성격을 모두 잃고 완전히 변해버렸다. 과거의 그와 지금의 그가 같은 점이 있다면 붉은 머리카락과 노란 빛의 눈동자, 그리고 불의 능력 뿐이었다. 이제는 능력의 제어도 문제가 없었지만 주민들은 그를 풀어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안에 있는 식량도 점점 떨어져가는데...젠장. 그보다 여긴 뭐야? 나 혼자만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잖아. 음식도 3년째 그대로고...."
그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시간'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어쩌면 이곳은 바깥과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에 그런 것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 때, 희미하지만 마력이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안쪽 시간... 300년...들어가...확인..."
그들의 목소리가 벽 너머로 들려왔다. 300년이라니. 그는 코웃음쳤다. 그래봤자 3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을 그들은 오해해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일단 그들을 속이기 위해 잠시동안 투명해지는 주문을 외웠다. 속삭이는 수준이었지만 주문의 힘을 이끌어 내는 데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Leco q spo rtiv."
그는 그 상태로 조용히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그가 없는 것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그러자, 그들의 앞에 서 있던 노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흠. 아마 그의 시간이 더 많이 흘러서, 뼈도 사라진 모양이군요. 아무튼, 이제 그는 없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기뻐했다. 그 모습을 본 그의 화가 다시 치밀었다.
그는 잠시 자신을 잃었다. 그리고 잿더미와 그을음 속에서 그는 자신을 다시 되찾았다. 잠시 생이 이어지고 있는 노마법사로 추정되는 숯덩이가 그에게 자비를 원했다. 그는 뒤돌아섰다. 무겁고 가벼운 두 쌍의 단검과 함께 그는 동굴 밖의 세상으로 향했다. 바깥은 자신이 갇혀있을 때와 그렇게 크게 변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따라, 한 3일 지난 것으로 추측해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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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를 싫어해도 신경 쓰이지 않아.
이제 그런건 아무 상관 없어.
나한테 필요한 건 사람의 체온 따위가 아니란 말이야.
사람의 체온이 필요 없는 이유?
하. 느껴본 적도 없는게 왜 필요해?
난 혼자였고, 지금도 혼자고, 앞으로도 혼자일텐데.
괴물이 사람을 좋아하는 거 봤어?
먹어버리기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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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그의 마음을 더 무뎌지게 만들었다. 그는 으슥한 뒷골목에서, 자신 안의 불을 이용해, 그리고 자신이 가져온 두개의, 무게가 다른 단검을 이용해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맡고 있었다. 도둑질과 사기도 그의 주 임무였다. 뭐 수 틀리면 몽땅 태워버리면 되니 그의 입장에서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의 불은 더욱 맹렬해졌고 사람을 더 빠르게 잡아먹었다. 사람 안에 직접 들어가 그 사람의 몸에서 타오르기도 하고, 주변을 새까맣게 불태우기도 했다.
그의 앞에 의뢰인이 서있었다. 검붉은 옷에, 검은 후드를 쓴 그는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의뢰인은 침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에겐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녀석이 지금 노예로 팔려가게 생겼습니다. 아내도 그 놈에게...."
"그래서, 목표는?"
그는 말을 가볍게 끊어냈다. 끊어진 말의 잔재가 그의 입 속에서 맴도는 듯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루아네르 백작입니다."
"루아네르...흠...."
그는 한참을 고민했다. 차가운 바람이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부드럽게 날리는 후드의 자락이 마치 흩어지는 어둠 같았다.
"3700골드."
"예? 하지만 그건..."
"못 하겠으면 말고. 참. 난 후불도 받는 사람이야. 약속만 된다면 말이지."
그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이 어둠과 합쳐져 음산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럼...백작에게서 받아내는 건 어떻습니까? 백작은 최근에, 그 구하기 힘들다는 푸른 다이아몬드를 구했다고 하니까, 그것 말고도 그에게는 수많은 보물이 있고."
"그것도 좋지. 그럼."
어둠 속으로 녹아든 그가 백작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거...경비가 꽤 삼엄한데?"
그는 예전의 투명화 마법으로 몸을 숨기고, 경비원들의 주머니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허나 열쇠를 다 삼키고 다니는지, 그 누구에게도 열쇠는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차가운 칼날의 소리가 공중을 가르는 소리에 경비원들이 놀라서 다가왔을 때, 이미 희생자는 쓰러진 뒤였다. 계속 들려오는 비명소리. 허나 이 전문적인 살수는 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ㅁ...뭐야. 귀신이야 뭐야! 무서워 죽겠다고!"
"몰라, 집에나 가고 싶다고! 이 더러운 놈 집을 경비한다고 신이 벌을 내리는 거야!"
그 상황은 집단적인 공포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있었다. 남은 장병들은 모두 제각기 도망치기에 바빴다. 백작은 자고 있는 듯, 사람이 나올 기미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크아악-"
"대장님이 당했다! 도망치자!"
대장이 당했다는 소리에 그는 방금 전 자신이 죽인 시신을 뒤져보았다. 집 열쇠는 없었지만, 병영 열쇠는 있었다. 그는 병영 문을 열어젖혔다. 예상대로 병영에는 집 안과 통하는 통로가 있었다.
한 여인과 함께 침실에 있던 백작을 본 그는 가차없이 백작을 베어버렸다. 그는 그 여인을 뒤로 하고 조용히 떠나려 했으나 여인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저...저기...."
"뭐."
"감사합니다. 그리고...절 집에 데려다 주실 수 있나요?"
"시간 없다."
"부탁드려요...네? 사례는 할께요."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녀를 들쳐맸다. 창고에 잠시 들러 값나가는 것만 몇개 챙긴 그는 마을로 향했다. 그는 거의 올 일이 없는 장소인 마을 시장 쯤 와서였을까. 한 집에서 딸아이를 찾는다는 내용의 방을 보았다. 그는 그 집을 찾아 그녀를 문앞에 툭 던져놓고는 슬쩍 사라졌다. 그것이 그만의 해결 방식이었다.
◇
다음 날, 그는 자신이 잘 아는 인물에게 가서 가져온 보석을 돈으로 바꿔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어제의 그 여인을 발견했다. 그는 일부러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사람의 온기는 그에게 있어서 가짜 보석같은 것이었기에. 하지만 먼저 그 여자가 말을 걸었다.
"아, 어제 그...그 땐 고마웠어요. 그러니까..."
"할 말은, 그게 다야?"
"네? 저..."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사라져버렸다. 사람과 오래 대화하는 건 그에게 위화감만을 만들어냈다. 그랬기에, 대화도 가능한 한 짧게 끝냈다. 사람과 진중한 대화를 나눠본 적 없는 그로써는 당연한 일이었다.
◇
다음 날도 그를 찾아온 그녀. 그녀는 어제의 목적이었던, 아름다운 브로치를 그의 손에 넘겨주었다. 차가울 것 같았던 그의 손은 예상 외로 따뜻했다. 여전히 표정도, 말도 없는 그에게 살포시 웃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 가볼께요. 이만..."
"잠깐."
5분간의 대화에서,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던 순간이었다. 그녀가 살며시 돌아서며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나 바쁜데..."
"이름이 뭐지?"
"아리엔 리트. 아리엔이라고 불러요."
"흐음..."
그는 특유의 음습한 느낌을 주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아리엔 리트...나중에 내가 필요하면 불러달라고. 딱 1번, 무상으로 도와드리지. 내 이름은 레인이다."
그가 그녀의 눈 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이 여자, 아니 아리엔이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이유를 몰랐다. 그저 '구해줬기 때문에' 정도 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
며칠이나 지났을까. 그는 편지 한장을 받았다. 아리엔의 편지. 그저 '도와줘'라고만 쓰여있었다. 그는 전에 간적이 있던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는 두런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딸애가...납치...무능....당신.......!"
"장소....?"
"그라도.....저택....지하실.....3만.....어떻게....!"
"편지...보내......?"
"레인.....몰라도......보내...."
"그자...도움......"
"아.....구원......"
그라도, 저택, 지하실. 그가 얻을 수 있는 유용한 정보는 그것 뿐이었다. 일단 그 '그라도'라는 인물에게 가볼 필요가 있겠다.
◇
그라도의 저택이라는 곳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마을 중앙의 가장 화려한 저택은 그의 오만의 높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코가 하늘을 뚫었겠지.'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저택 내부 경비는 예상외로 허술했다. 허술하건 아니건 간에, 다시 한명씩 떨어져 나가는 저택 안에서의 게임이 시작되었다. 룰은 하나. 낙오되면 죽는다 뿐. 공포는 게임을 더욱 가속시키는 촉매가 되어 빠르게 퍼져갔다.
"또에요...저번에 겪은적이 있어요! 아아, 난 곧 죽고 말꺼라구요!"
"약한 소리. 왜 그렇게 심약한 소리ㄹ...크억.."
말 하나를 판에서 치우는 순간이었다. 그 옆에 있던 한 앳된 소년. 돈이 없어서 이런 삶을 사는걸까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너."
"ㄴ...네? 아..저...."
"지하실 열쇠, 내놔."
그는 말을 길게 끌지 않았다. 협박 한마디도 없었다. 하지만 공포는 소년을 순응하게 만들었다. 소년은 능숙한 솜씨로 서랍장을 뒤져 열쇠 꾸러미를 찾아냈다.
"이 중에 있을 꺼에요,"
"그리고, 빨리 나가."
"...예?"
그는 잠시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그가 말을 알아들은 것은 레인의 차디찬 칼날이 목 앞까지 들이닥쳤을 때였다.
"한번만 더 이런 곳에서 내 눈에 띄면, 죽인다."
"ㄴ...네...!"
"나가."
소년은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본 레인은 지하실 쪽으로 향했다. 차가운 발걸음에 피가 묻어났다.
지하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소년이 준 열쇠 속에는 지하실 열쇠가 없었다. 대신 그는 불로 문을 녹여냈다. 뚝뚝 떨어지는 붉은 쇳물이 정적을 깼다. 나머지는 어렵지 않았다. 그저 베면 끝이었다. 마침내 그는 그녀를 찾아냈다. 이번엔 그녀를 들쳐메지 않았다. 아리엔을 업은 그는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저..."
"뭐."
"고마워요. 구해줘서..."
"그럴것 까지야. 부탁할 건?"
"음..."
그녀는 살짝 고민하다가 부드럽게 말했다.
"오늘은 나랑 같이 있어줘요. 혼자는 무서울 것 같아서."
"알았다."
그는 예상 외로 순순히 수락했다. 그녀를 문 앞에 내려놓은 그는, 빠르게 그녀의 방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을 톡톡 두드리자, 그녀가 창문을 열어주었다.
몇분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리엘이 질문하면 레인이 대답하는 방식. 그 대답도 단답형이었지만, 그녀는 그것도 즐거운 듯 보였다.
"저기, 당신 과거 이야기 해줄 수 있어요?"
"응...응?"
돌발질문에 놀란 그가 살짝 당황했다. 그래도 아리엘에게라면 말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그는 입을 열었다.
"난...사람들이 싫어하는 괴물이었어. 불을 다룰 수 있었는데, 조절을 못했거든."
"아..."
"사람들은 날 차디찬 동굴에 가뒀어. 안에서 3년정도 지나니, 그들이 날 보러 오더군.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기뻐하는 그들을 모두 태워버렸어. 밖으로 나와보니, 사실상 3일밖에 지나지 않았더군. 그 길로 마을을 나왔어. 그리고 5년째 이렇게 살고 있어. 그게 끝이야."
"사람이 죽은 걸 기뻐했다구요...? 어쩜 그렇게..."
"지금은, 신경쓰지 않아. 어차피 난 괴물이니까. 계속 혼자일테니까."
그녀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그러나 슬프게. 그는 할수 있는 한 최대로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비록 그는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몰랐지만, 최대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따뜻하게 해주었다. 떨고있는 그녀를 위해 자신 안의 불을 미약하게 내보냈다.
"아...따뜻해요. 이게 당신의 능력인가요...?"
"약하게 써서 이정도야."
"정말 따뜻해...포근하고...잠들어버릴 것 같아요."
그녀는 이내 그의 어깨에 포근히 기댔다. 그는 그녀가 그대로 자도록 내버려두었다. 아마 심한 충격으로 잠도 못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람의 온기는 그에게도 따스하게 다가왔다.
◆
다음 날, 나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부모와, 마을 경비대가 그녀의 자리를 대신했다.
"너....!"
"흥. 네가 암살자란 걸 알았으면, 그 편지따위 보내지 않는거였다!"
"배은망덕한...!"
불을 끌어내려 해보았으나 불은 어째 내 몸 속에서만 맴돌았다. 사람들이 나를 야유하고 있었다. 과거와 똑같았다. 칼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하, 봉인당한 불요괴가 따로 없구만 그래. 자, 연행해!"
불요괴. 그 말에 나는 나를 잃었다. 나를 되찾았을 때, 나는 이미 연행되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가 나에게 한 배신에 치가 떨렸다. 딸을 두번이나 구해줬는데, 그들은 이런식으로 은혜를 갚았다. 사람의 온기는 이미 나를 떠나고 없었다.
재판이야 볼것도 없이 사형이었다. 사형은 2달 뒤. 사형수가 밀리기라도 했는지 기간이 이상하리만치 길었다. 재판정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울고 있는 그 모습이 아련한 옛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이 놈, 잡아다가 고문이라도 해봐. 그 동안 벌어들인 돈을 국고로 회수해야 해."
마법으로 능력이 막혀있어 저항도 할 수 없는 신세. 고문 기술자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얼굴을 쭉 둘러보고는 기분나쁘게 웃었다.
"헤, 어떻게 다뤄줄까, 아가씨?"
"네 꼴리는 대로 다뤄라. 변태자식."
말은 최소한 적게, 그러나 최대한 성을 돋구는 어휘를 선택했다. 그게 내 대화 방식이니까. 그의 매서운 채찍이 등을 때렸다.
"자, 어서 말해. 돈을 어디다 감췄지?"
"큭...너한테 말하느니, 죽고 말지."
다시 채찍질이 이어졌다. 하지만 고통은 그녀의 울고있는 모습에서 연상되는 감정에 파묻혔다. 기술자놈도 지쳤는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나를 병사의 손에 넘겼다. 병사의 손을 뿌리치고 스스로 걸어갔다. 비록 피를 좀 흘려서인지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스스로 걸어갔다. 누군가에게 절대 의지하고싶지 않았다.
◇
다음 날 부터, 그녀의 편지가 나에게 왔다. 매일 한장씩. 답장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와의 편지가 나에게는 희망이었다. 그녀의 따스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속삭이는 듯 했다. 희망을 가지라고. 편지들은 모두 모아두었다. 그녀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였기에.
몇일이나 이 안에서 살았을까. 편지가 5개쯤 쌓였을 무렵부터, 간수들이 편지를 버리려 할 때 마다 나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편지를 꼭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어느 샌가 내 마음 한 구석을 차지했다. 답장도 인장을 뜯어 내용을 본 뒤에 보냈다고 하면 화가 났다. 간수들, 그리고 죄수들 사이에서 나는 어느 새 '편지에 집착하는 이상한 놈'으로 알려져 있었다. 편지 개수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에, 하나라도 사라지거나 다른 문서와 바뀌면 안되었다. 내게 있어 편지는 그녀였다. 어느 새 그녀를 향한 혼잣말도 들었다.
"언젠가...다시 보고 싶어. 그렇지? 응..."
홀로 말하는 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편지 개수를 세어 하나도 빠지거나 다른 문서로 바뀌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인장도 모두 모아두었다. 그녀가 직접 찍은 인장.
"항상, 직접 찍어주겠지. 그럴꺼야."
편지의 문체는 언제나 따스했다. 그녀의 목소리처럼. 그녀는 평소 가수가 되고싶다고 했다. 아마 지금도 노래 연습에 힘을 쏟고 있겠지.
"그녀는 가수가 되었겠지? 아직 안됬더라도 될꺼야. 목소리가 아름다우니까. 내가 살아있을 때 가수가 되어서, 여기 위문 공연이라도 와주면 좋겠다. 목소리를 다시 듣고싶어..."
"어이, 346번. 편지 왔다!"
편지라는 소리가 혼자 이어가는 대화를 끊었다. 인장을 조심스레 뜯어 안의 내용을 살폈다. 편지에는 내 단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걸 자신이 가지고 있어도 되겠냐는 내용.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이 집안에 있는 것에 대한 회의. 쭉 읽어본 후, 그녀에게 답신을 보냈다.
'아리엘에게.
단검은 가지고 있도록 해. 아마 내가 살아 나오지 않는 한 나보단 너에게 필요할 테니까. 혹시 알아. 가족이 너무나 싫어져서, 집을 나오게 될지. 내가 돌아오면 가져갈 수도 있겠고. 독립하게 될 거라면, 무거운 단검을 들고 전에 브로치 줬던 곳 뒤쪽 건물로 들어가. 그 안에 상자가 있어. 너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으니까 가져가. 도움이 될거야. 다음에도 편지 해줘.
- 레인.'
인장을 꼼꼼히 봉해 간수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품에 안았다. 그녀의 체온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아니, 품에 안은 것은 그녀였다. 집안에 대해 회의를 가져 고민하는 그녀였다. 간수가 그녀를 데려가려 했다. 순간적으로 민감해진 신경이 그 움직임을 눈치챘다.
"내놔."
"안돼. 다시 가져가야 한단 말이다."
"내놔! 당장!"
그의 손에서 편지를 빼앗으려 했으나 저지당했다. 그녀를 되찾아야한다. 반드시. 그녀를 되찾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내놔...아리엘을...아리엘을 돌려줘!"
"뭐? 아리엘?"
간수는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틈을 노려 그녀를 되찾았다.
"아리엘...아리엘..."
"허...이놈 봐라. 중증이네 아주..."
그녀를 쓰다듬었다. 아까의 혼란이 진정이 되었는지 그녀는 웃고 있었다.
"다행이야...다친 데 없지, 아리엘?"
다른 간수의 시선, 그리고 대화하는 두 간수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녀와 함께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들어오는, 하얀 옷의 사내들. 아리엘과 함께 있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고개만 젓고 그들끼리 몇마디 말을 주고 받은 뒤 나가버렸다. 상관 없다. 아리엘만 있으면 된다.
◆
"그게, 원인을 모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상실에 의한 건지, 아니면 그녀의 물건에 대한 애착이 심해진건지..."
"거기다가, 한번은 똑같은 재질의 종이에 똑같은 내용으로, 글씨도 최대한 비슷하게 베꼈는데, 신기하게도 그게 바뀐 걸 알아채더군..."
하얀 옷의 사내들이 간수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의 말투는 걱정이 배어있기보단 귀찮은 일을 막고 싶어하는 듯 느껴졌다.
"일종의 °강박증인데, 그게 °°망상증으로까지 발전한 것 같습니다."
(°강박증 : 한 동작, 물건 등에 극도의 집착을 보이는 것. 손을 계속 씻는다거나, 쓰레기 등을 모아 버리지 않는 것을 지칭한다. 카타처럼 귀찮아서 쓰레기 안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명심하도록!)
(°°망상증 : 흔히 과대망상이라고 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있지도 않은 것을 사실이라고 믿는 정신병적 증상.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 나는 신이다 하는 망상이 그 예. 이게 지나치게 심하면 구제가 안된다. 구제 못하는 예 : 주인공.)
간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감옥에서는 그가 편지에 대고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저런 문제가 생긴다는 건 추후 어떤 문제가 생길 지 모른다는 거다.
"일단, 편지와 함께 격리시키는게..."
"안돼. 방이 모자라."
"그럼, 추후 들어오는 죄수들에게 일러주셔야 합니다. 절대, 편지에 손대지 말라구요."
◆
사람들이 몇명 새로 들어왔지만 상관 없었다. 아리엘과 함께니까. 다시 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346번, 편지다."
잽싸게 나가서 편지를 받았다. 새로 온 사람들이 편지에 대해 물었다.
"어이, 말라 비틀어진 형씨. 그 편지는 뭐유?"
"아리엘. 그렇지?"
"이상한 형씨네. 새카매가지고 혼자 대화하고...아리엘이 누구요?"
대화를 그만두고 아리엘의 목소리를 듣는데에 집중하려던 찰나, 아까 그 남자가 아리엘을 데려갔다.
"내놔."
"하, 까만 옷 형씨, 나도 좀 읽어봅시다."
"당장 내놔!"
그가 내게서 아리엘을 데려갔다. 안된다. 이런 일은. 잊고 있었던 살수를 사용했다. 이런 무방비상태의 적은 간단한 살수로 끝낼 수 있었다. 명치를 손으로 가능한 한 깊이 찌르자 바로 쓰러져버리는 남자. 그에게서 아리엘을 되찾았다. 다시 빼앗길 뻔한 그녀는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자, 앉아요. 마저 이야기 해줄께요."
"그래. 이야기를 들어야지."
"당신, 말이 많아졌어요. 특히 나랑 있을 때."
"말이 많아졌나. 그럴 만도 하지. 너와 함께인데."
그녀의 목소리가 기분좋게 내 귓전에 달콤한 이야기를 속삭였다. 그 남자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녀가 멀리 가게 되었다고 한다. 모험가가 되어,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겠다고 하는 그녀. 이야기를 해주던 아리엘을 끌어안았다. 말을 멈추는 그녀. 품에 안긴 그녀가 속삭였다.
"미안해요."
"아니야, 괜찮아, 그래도 돼...그럼..."
간수가 돌아왔다. 그는 쓰러진 남자를 보고는 놀라서 달려들어왔다. 아니 외부세계의 환상일 뿐이다. 간수가 동료를 불렀고, 쓰러진 남자에 대해 말한다. 곧 간수들이 남자에게서 살수의 흔적, 그리고 손에 약간 묻어난 잉크의 흔적을 발견한 듯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건다. 아니 이 또한 외부의 잡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내 시체가방이 도착했다. 아리엘은 여전히 내 품에 있다. 시체가방에 남자가 들어간다. 이내 아리엘을 품에 안고 잠들었다.
◆
어제의 그 일로, 사형이 앞당겨졌다는 모양이다. 내일로. 허나 아무 의미도 없다. 간수들이 편지를, 아니 아리엘을 가져가려 들었다.
"안돼! 아리엘! 그만 해! 그만 하란 말이야!"
"하. 어차피 죽을 놈이. 걱정 마라. 널 파묻을 때, 이 재도 같이 묻어주지."
"아리엘! 아아아아!!"
힘없이 끌려가는 그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싫었다. 어릴 적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무력하게 끌려 들어갔다. 곧 내가 죽을 곳. 무감각하게 회색 벽을 바라보았다.
"아리엘...아리엘..."
의미 없는 말의 반복. 그리고 '푸쉬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죽음이 닥쳐왔다. 그녀와의 대화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브로치를 줄 때 왜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보석상에서는 왜...그녀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그대로 등을 돌려 문쪽으로 사라지는 그녀.
"안돼...아리엘...나를...."
이내 시야가 어두워졌다. 애초에 사는 세계가 달랐기 때문일까. 나는 어둠이고 그녀는 빛이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위험한 짐승이고 그녀는 한송이 꽃이기 때문에, 신은 우리를 같이 있게 하지 못한 것일까. 좁고 어두운, 굳게 닫힌 방에서 내 목소리만이 죽음이 주는 공기를 울렸다. 가슴도, 숨쉬는 것도 괴롭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듣고 싶었어. 모습을 보고 싶었어...
◇
한 숲속, 여자 모험가가 헤메이고 있었다. 옆구리에 찬 두 단검은 검은 가운데 붉은 빛을 비추고 있었다.
"엇차- 휴, 힘들다..."
그 곳에서 쉬려던 그녀는 그 곳에서 알을 몇개 발견했다. 붉은 빛이 도는 알을 집어들고 간지 몇분 되지 않아, 알에서 보드라운 붉은 털을 지닌, 따뜻한 용이 태어났다.
"어머, 성격도 급하지...따뜻해라...이 용 종류가...아! 글레즈였지! 앞으로 잘 부탁해, 글레즈!"
글레즈가 울어댔다. 애처로운 듯 슬픈 듯 한 울음소리. 그녀는 글레즈를 어르고 달랬다.
"어이구...왜그래, 글레즈. 뚝. 내가 금방 맛있는거 줄께. 기다려. 뚜욱-"
아, 아니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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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
ㅋㅋ
ㅋㅋㅋ
ㅋㅋㅋㅋㄱㅋㅋㅋㅋㅋ 아 리안님 고멩네해옄ㅋㅋㅋㅋㅋㅋㅋ 아 오글터★짐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쓰는데 제일 재밌었던것 같아여(그리고 역대 분량 1위) 암튼 양만 많은 졸작 잘 봐주시길 바랍니당 :)
삽화를 넣고 싶은데 이 모발이새기가 말을 안들어요 훌쩍...
다음 작품 : 흑룡과 백룡 듀오(응?)
원래 "미안해요." 위에 들어갈 삽화입니다만, 중간에 안들어가는 문제가 있는데 썩히기도 그렇고 해서 밑에 올려봅니다.
하이브로는! 모발에서! 그림 올린 뒤에! 붙여넣기를! 가능하게 해줘라!/1인시위. 그리고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아나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