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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구더기들의 왕
2022-09-23 19:58:49

 

작은 구더기를 위한 교향곡(1)




 비가 내렸다. 한나절을 버틴 잿빛 하늘이 기어이 속을 게워냈다. 사방을 가득 채운 텁텁한 전장의 향기가 문득 흐려졌다. 그러나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착각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만들 것이다. 군홧발과 함성으로 도망간 전운을 끌어올 것이었다. 다름 아닌 우리 사람이.




 남자는 비와 땀으로 미끄러지려는 그립을 애써 부여잡고 검을 휘둘렀다. 상대의 목이 반쯤 갈리고 더러운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래도 상대는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남자는 다시 검을 내지르기보단 허리춤의 손도끼를 빼, 놈의 머리를 찍었다.



 피라고 하기엔 조금 맑은 액체가 줄줄 흘렀다. 놈이 달려들던 속도 그대로 거꾸러졌다. 그는 놈의 목을 붙잡고 자신의 옆에 세웠다. 녹슨 미늘창이 놈의 시체를 뚫고 그의 가슴팍 바로 앞에서 멈췄다. 남자는 즉시 시체를 걷어 지우고 검을 내질렀다. 쓸 만한 방패가 없었던 적병은 가슴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는 새 적이 자신을 찾기 전에 도끼를 뽑으려고 무릎을 굽혔다. 시야가 필요 이상으로 낮아졌다. 그가 자신이 쓰러졌다는걸 이해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의 밑에 아직은 따뜻한 적병이 깔려 있었다. 그는 상대의 시체 위에 엎어져 비가 자신을 두드리는 감각을 느껴야 했다. 얼른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나약한 몸이 안식을 껴안고 도무지 놓지를 않았다. 



 그는 검으로 땅을 찍었다. 타고 기어오르려 했다. 진탕이 된 땅은 그를 충분히 지탱하지 못했다. 머리가 다시 한번 처박혔다. 불행이라면 이번엔 진창이었다. 숨을 쉬려고 뻐끔거릴 때마다, 진흙이 코와 입으로 들어왔다. 폐를 조이는 고통에 시야가 점점 아득해졌다. 완전히 정신을 잃기 전에 그는 가까스로 고개를 치켜들 수 있었다.




"프하, 컥, 케흑`




 진흙과 타액이 섞여 잇새 사이로 줄줄 흘렀다. 눈꺼풀이 더없이 무거웠다. 하나 지금 눈을 감으면 죽을 게 분명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고작 이런 곳에서, 저런 놈들에게 허무하게 죽으려 긴긴 명줄을 붙잡고 선 게 아니었다. 그는 검을 들어 옆구리를 내리그었다. 자상 특유의 타는듯한 고통이 남자의 몸을 깨웠다.



"흡"



 한 번. 그는 단 한 번의 호흡에 몸을 일으켰다. 무릎이 어지러이 떨렸다. 전신에 도무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서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알았고, 그게 지금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도 싸워야 해. 그는 스스로 몇 번이나 뇌까린 말을 다시금 되새겼다.



 소리가 멀어져 갔다. 병사들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내지른 고함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와 찰나의 폭음이 전장의 망령처럼 이리저리 떠돌았다. 빗방울이 몸을 두드리는 소리조차 아득하다.




"아, 그래. 비." 그는 굳은 성대로 목소리를 토해냈다. 흡사 쇠를 긁는 소리가 빗속에 잠겼다. "언제부터, 내린, 거지?"



 그는 스스로 답을 찾고자 발을 땠다. 끔찍한 탈력감이 엄습했다. 전신의 근육 하나하나가 더는 안 된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검을 쥔 손에서 자꾸만 힘이 세어나갔다. 그는 검을 버리고 건틀릿에 장식된 한뼘 남짓의 날붙이을 뜯어 쥐였다. 



 붉지 않는 곳을 찾는게 더 빠를 듯하던 그의 몸을 비가 씻어내렸다. 몸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식어갔다. 남자는 눌러붙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겼다. 이미 굳은 피가 비에 다시 녹아 시야를 어지럽혔다. 



"아아, 왕녀님. 비가 그치는건 언제입니까."



 당신이 약조한 구원이 보이지 않나이다 번개 하나가 내리쳐 달도 별도 차취를 감춘 전장의 어둠을 물렸다. 문득 그는 더 이상 몸이 무겁지 않다는걸 느꼈다. 되려 가벼웠다.



 몸에 걸친 갑주와 질척이는 진창의 무개가 환영처럼 흩어젔다. 그는 이게 결단코 좋은 징조가 아님을 알았다. 한계의 끝과 죽음의 문턱에서 머무는 찰나, 그 찰나가 예비해둔 미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끝마처야만 했다.



"로드 에르카미온."



 번개가 양분한 어둠은 전조도 없이 한 사내를 토해냈다. 빗방울이 사내의 번들거린는 갑주를 타고 굴렸다. 투구 사이로 드러난 입술이 사납게 찢어졌다. 면면이 반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남자는 사내가 자신의 오랜 친우임을 알았다.



"오랜만이오. 리그레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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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요. 제가 아는 분들은 거의 없지만서도...

오랫동안 안 오다 왜 기어왔냐고 물으신다면, 최근 시간이 많아졌거든요. 왜나구요? 의무야자를 시켜서 그렇습니다.

아니 1학기 끝난 고3한테 의무야자를 시키는 학교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참다참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야자 시간에 글써서 올립니다. 중간고사 전까지 의무야자는 선 넘었지 ㄹㅇ ㅋㅋ...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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